내가 만난 여성 과학자들 - 직접 만나서 들은 여성 과학자들의 생생하고 특별한 도전 이야기
막달레나 허기타이 지음, 한국여성과총 교육홍보출판위원회 옮김 / 해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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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트루드 샤프 골드하버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어린이로서, 나치 독일에서는 유대인으로서, 여성 전문직 종사자가 거의 없던 시절에는 과학 분야의 여성으로서,그리고 친족등용금지법이 엄격하게 적용되던 법치 시대에는 다른 과학자의 아내로서, 그녀는 인생 전반에 걸쳐 폭력과 차별에 맞서 사워야 했다.(-75-)


최소한 시행착오가 남성들이 하는 실수보다는 적어야 하죠.젊은 남자 연구원이 실수를 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야심이 있군,그런 실수야 누구든 할 수 있지'라고 하지만, 그게 젊은 여성 연구원일 때는 과도하게 평가를 합니다.사람들은 적극적인 여성을 좋아하지 않아요.남자가 적극적이면 칭찬을 하거나 '그래야 정상'이라고 여기죠.하지만 여자가 적극적으로 남바처럼 처신하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겨우가 많아요. (-282-)


그녀는 이스탐불 대학교에서 공부했다.졸업 후 취직하려 했으나 당시만 해도 여성 교육을 마뜩치 않게 여기는 편견이 있었다.다행히 이스탄불 대학교 약학부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몇 년 후에 거기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그녀는 미네소타 대학교 약학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치고, 귀국해 이스탄불 대학교 조교수로 임용되어 1998년에 은퇴할 때까지 정교수로 재직했다. (-469-)


여성 과학자 하면 먼저 생각나는 이가 마리 퀴리이다.노벨과학상 중에서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은 여성으로서, 과학에 있어서 입지적인 인물이다.남편 피에르 퀴리보다 마리 퀴리의 업적을 먼저 두각을 나타냈으며, 핵물리학자로서 우라늄과 플루토늄 발견에 공을 세운 여성 과학자이다.하지만 마리 퀴리는 그 시대의 여성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여성 과학자로서 입지작인 인물이지만 프랑스 학술원에 마리 퀴리는 빠져 있었다.그건 마리 퀴리의 딸 이렌 조리오퀴리도 마찬가지였고, 남편 피에르는 프랑스 학술원에 명예회원으로 등재되어 있었다. 이처럼 여성 과학자의 차별과 편견은 전방위적이었고, 노벨상이 만들어진 이후 2018년까지 여성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은 케이스는 총 17번 뿐이다.이처럼 열악한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 과학자는 자신의 과학사적인 업적을 높였으며, 물리학,화학, 생리학, 의학까지 전방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책에서는 지금 현대인들이 상식처럼 생각하는 과학 이론들 중에는 여성 과학자의 업적과 엮여 있는 경우도 다수 있으며, 이론 물리학자의 메리 게일러드는 입자 가속기를 통해 힉스 입자 발견에 큰 공을 세운 여성과학자였다.특히 힉스 입자 발견으로 우주의 구성 물질에 대해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 졌으며, 힉스 입자 발견 뿐 아니라 중력, 초끈 이론까지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는 검증되지 않았지만 이론 물리학 영역에서는 통용되는 ,과학사적인 업적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은 여성 과학자들의 업적이 도드라진 시기였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과학자들은 전쟁에 이기기 위한 신기술을 만들어 냈으며, 핵물리학의 독보적인 비약이 있었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발견,이후, 인간이 원자를 충돌하여 세로운 인공 원자들을 개발하였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프로정신을 갖추고 있었다. 화학 뿐 아니라 물리학, 생리의학상, 천문학, 이론 물리학까지 섭렵하였으며, 컴퓨터 과학의 중흥기를 이끌어 나갔다. 여기서 사회의 엄격한 잣대는 여성 과학자 스스로 자신에게 엄격하였으며,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그 시대에 걸맞게 자신의 위치에 대해 과학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부단한 노력들이 존재하였다. 때로는 부부로서, 남편의 그늘에 숨어 있었던 여성 과학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성 과학자에 대한 시선이 바뀜으로서 여성 과학자들 스스로 남자의 그늘 뒤에서 일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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