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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작은 가게 이야기 -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정나영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살던 동네는 그 리 번화한 곳도, 젊은이들의 메카인 힙한 곳도 아니었다.근처에 대학이 있기는했지만 그저 대학이 있는 오래된 동네여서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이 먹고 마시고 공부하기에 좋은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그러나 6년만에 돌아온 이 거리는 낯설다.서울의 여느 거리처럼 이제 대형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이 두어 집 건너 하나씩 들어서 있다. (-8-)
블루노트는 작은 공연장이었다.유명 혹은 무명의 인디 가수나 밴드가 공연을 하곤 했는데 컬럼비아의 젊은이들 중 블루노트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1980년에 처음 문을 연 블루노트는 마흔 살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은이들의 메카이고 인디문화의 상징같은 존재였다. (-70-)
엘로우독 서점은 다양하고 지적인 모든 분야의 좋은 중고책들을 알차게 구비하고 있었으니 책 읽기를 좋아하는 대학가 젊은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셈이다.그러면서도 학교 서점이나 반즈앤노블의 특성과 적절히 차별화하고 있었다. 이 작고 소박하며 따뜻하고 영리한 옐로우독 서점은 그렇게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 시장의 어느 한 부분을 잘 점유하고 있었다.(-135-)
애비드 서점은 노란색 페인트를 칠한 문들과 적갈색의 벽돌로 된 뱍이 인상적인 아주 작은 서점이었다.그 뒷문 위에는 하얀 바탕에 빨간 글씨로 애비드 서점의 이름이 적힌 고풍스러운 모양새의 간판이 깃발처럼 매달려 있었다.똑같이 노란 테두리를 한 큼지막한 창문들은 종종 이런저런 색깔과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다.불과 6년여 전에 일단의 젊고 진보적인 이들이 모여 시작한 비교적 새롭고 현대적인 이 서점은 외관만큼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205-)
내가 사는 곳에는 오래된 가게는 간간히 있지만, 오래된 작은 가게는 많지 않다. 대다수의 작은 가게들은 운영하지 않고, 간판만 덩그라니 남아 있으며, 가게가 아닌 가정집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런 원인은 바로 우리 시대가 많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년전 우리들의 삶의 패턴과 즐길거리들을 보면, 지금과는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과거 작은 오락실이 사라졌고, 작은 서점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대체하게 되고, 우리는 오래된 것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가까이 가지 않게 된다.그래서 오래된 작은 가게들은 대부분 시골에 가야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단적으로 달라스 햄버거 가게를 보더라도 도심에는 달라스 햄버거 가게가 사라졌고, 프랜차이즈 가게가 들어서 있지만,시골 숨겨진 곳에는 여전히 달라스 가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된 가게가 살아남으려면 일단 욕심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욕심을 가지게 되면, 수익과 경제성에 집착하게 되고, 오래된 작은 가게의 가치가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오래된 작은 가게에서 경험과 특별한 추억을 얻고 싶어한다. 작년에 왔던 그곳이 1년 뒤 와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다시 찾기 마련이다.그런데 우리가 욕심을 가지게 되면,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고, 단골 고객은 그 변화에 익숙하지 않아 발길을 돌리게 된다. 문제는 판매자의 입장으로 보면 그냥 인테리어를 두면 손님이 끊길 것 같은 불안이 상존한다.그래서 가게 주인과 고객 사이의 적절한 타협안이 필요하다. 특히 작은 서점들의 생존 법칙은 대형 서점들의 틈바구니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독특한 자구책이 될 수 있다. 오래 되었으면서, 그 안에서 그 역사를 온전히 느낄 수 있고, 소비자가 원하는 포지셔닝을 작은 가게에서 느끼게 된다면, 한 번 찾아온 사람은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또한 고객은 사장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우리 사회에 프랜차이즈업체가 곳곳에 들어서는 이유는 바로 그 관계가 단절되어서 이다. 일회성에 그치게 되고, 한 번 찾아와도 감흥이 없다. 나에게 특별한 감동이나 기억이 상존한다면, 다시 찾아올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재방문 확률은 낮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