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선생님
강성률 지음 / 작가와비평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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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은 나라는 아이에게 관심조차 없다!'
두 손을 들어 올리는 모양도 취하고, 고함을 지르며 탁자를 내리치는 흉내도 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여전히 각각, 자신의 몸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는 것처럼 꺼졌다. 아니나 다를까.클라이맥스에 도달할 즈음 대사를 까먹고 말았다. 충혈된 두 눈으로 아무리 원고를 들여다봐도 연결되는 대목은 발견되지 않았다.(-44-)


불의의 접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민수는 백묵으로 책상의 한가운데에 '38선'을 그었다. 물론 상대방의 동의하에 체결된 신사협정이었다.그러나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책이나 공책, 지우개나 칼, 어떨 때는 신체의 일부분이 넘나들기 마련인 바, 둘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상대를 응징하곤 했다.(-106-)


1980년 1월 3일, 한 장의 편지가 도착했다.'2월 2일로 결혼 날짜를 잡았으니 그리 알라'는 김씨의 일방적인 통고.당사자와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결정을 내린 김씨의 처사가 당황스럽긴 했으되, 고대하고 있던 소식인 것만은 분명했다. 작년 봄, 그러니까 광주 상무대에서의 보병학교 훈련 시작 한 달 만에 외출을 했고, 바로 그날 민수는 약호식을 올렸다. 약혼한 지도 거의 1년이 되어가는 마당에 결혼을 미룰 까닭이 없었다.연천읍의 한 다방에 들어가 전화를 걸어갔다. (-169-)


하지만 정치는 어디까지나 정치, 민수로서는 교수직에 진출하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일이었던 바, 그럼에도 인사문제는 좀체 풀리지 않았다.그러다가 마침내 전공분야마저 공채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더 이상 버티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존심 마저 버리는 일이라 여겨졌다. 농사를 짓건, 장사를 하건 그건 알바 아니었다.(-236-)


"김교수 ,날세."
"예, 아이고 선생님,그동안 잘 계시고요?"
부도라고 하는 쓰나미가 일상의 삶을 휩쓸고 지나간 다음,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학교로 그를 찾았던 일이 불과 작년 어느 때인데, 갑자기 웬일이실까?
"다름이 아니고, 우리 큰 아들을 이 참에 여워야 쓰겄넌디, 자네가 주례를 쪼까 서주어야 쓰겄네."
"예? 제가요?"
경제 위기가 아니더라도 주례는 서지 않기로 결심한 터, 거기에는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딸과 관련이 있었다. (-307-)


상당히 묘한 소설이다.이 책의 주인공 민수는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이다. 그대 당시 대한민국은 격동의 대한민국이라 부를 정도로 6.25 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내포하였고, 다이나믹하였으며, 인구 팽창이 현실이 되었다. 배고파도 아이를 낳으면 알아서 클거라는 사회적인 믿음, 아들이 살림밑천이라 부를 때가 있었다.그건 우리 사회가 제1차 산업혁명 체제 하에서 농업기반 경제구조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민수가 다닌 백수남 초등학교는 원래 백수남 국민학교가 맞다. 지금이야 초등학교라는 명칭이 익숙하지만, 그 때 당시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로 불리었다. 민수는 국민학교 5학년에 다니고 있었고, 학급 부반장이었다. 아버지는 국민학교 기성회장이었고, 학교 내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그 분위기는 베이비붐 세대만이 느낄 수 있는 학교 정경이다. 그때 당시 대한민국에는 웅변 대회가 있었고, 웅변대회의 주제는 대부분 애국과 사회 문제를 엮어가는 것이었다. 때로는 반공을 웅변 속에 집어 넣는 경우도 있었고, 학교에서 웅변을 장려하게고 있었다. 민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기에 학급 내에서 주목 받게 된다.하지만 민수는 그런 현실이 싫었다. 7개를 틀리면 7대를 맞는 학급 내 반 친구들이 내심 부러웠으며, 1개 틀렸는데 100대를 때리는 선생님의 행태에 대해 억울함을 느끼게 된다. 그때만 해도 때리면 때리는 데로 다 맞아야 하던 시절이었고, 학생들은 감히 선생님께 대들지 못하였다.그래서 민수는 한개를 틀려서 100대를 꾸역꾸역 맞아가게 된다.


그렇게 민수는 5학년이 지나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고,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명문 대학교마저 자신의 실력으로 패쓰하게 된 민수는 삶의 고비 고비때 마다 호랑이 선생님이 때린 회초리를 기억하게 된다. 자신에게 때린 매가 민수의 삶에 큰 변화를 주었고, 민수는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 대학교 교수가 된 이후에도 호랑이 선생님에게 깍뜻하게 대하였다. 돌아보면 이 책을 읽게 되면 지금의 정서와는 동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호랑이 선생님은 이제 사라졌으며, 자칫 아이들에게 매를 들었다가는 아이들에게 혼쭐날 수 있는 작금의 시대이다. 스마트폰이 우리 사회에 보급되면서 도리어 선생님의 권위가 떨어진 상태였다. 1960년대의 우리 사회의 교육의 현주소를 느낄 수 있는 책,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속담이 먹혀 들었던 그 시대의 온전한 자화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삶이라는 것은 이렇게 교차되고 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과거의 한 모습이 그때는 익숙함으로 남아있었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묘하게 어색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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