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 시간 특서 청소년문학 11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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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목걸이 하나는 기승이에게로 갔을 거다.영준이는 그렇게 훔친 물건을 기승이에게 준다.기승이가 중고 시장에 내다 팔든 어쩌든 들키지만 않게 처리해주면 영준이는 상관하지 않는다.물건을 처분한 돈을 달라는 소리도 절대 하지 않는다.기승이는 그렇게 용돈을 벌고 영준이에게 충성을 다한다. (-30-)


나는 서일이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좀 했으면 좋겠다.물론 사장님이나 화천이모 구름이 이모한테 주워들은 정보로 네가 왜 그러는지 대충 알기는 하지만 말이다.귀 닫고 입 닫고 그러고 살면 편한 거 같아도 사실 그렇지 않아. 그러면 마음 속에 가스 같은 게 차거든. 그 가스가 언제 어느 때 터질지 몰라.그건 훨씬 더 위험한 일이야.나도 너 같았었어.버림받았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참을 수가 없었어.하지만 참을 수 없으면 뭐해.누구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려고도 하지 않았지. (-116-)


그나저나 오늘 영준이가 결석한 이유가 궁금했다.영준이는 얼마나 맞은 걸까. 설아는 결석할 정도는 아이라고 했다.지능적으로 때리는 서지호 주먹 실력을 볼 때도 그렇다. 나도 서지호에게 맞았을 때 그날은 죽을 거 같았지만 다음 날 아침에는 움직일 수 있었고 얼굴의 부기도 금세 빠졌다. (-179-)


나는 영준이가 혼자만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영준이는 자시의 생각만으로 엄마를 미워하며 증오를 키웠고 그 증오는 영준이 가슴을 파랗게 멍들게 했다.아무 상관도 없는 여자아이들을 증오하고 미워했다. 짱구 형이 걸핏하면 아이들을 두들겨 팼던 것처럼. 나는 영준이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짱구 형이 불같이 보냈다던 시간을 계산해봤다. 열세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어림잡아 6만 시간 정도였다.6만 시간 도안 불을 끌어 안고, 미움을 끌어안고 사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233-)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성장하게 된다. 태어나면서 부모의 그늘 밑에서 자라난 아이의 성장 과정은 때로는 삶에서 벗어나 이탈하게 되고 때로는 삶에서 벗어날 때가 있다.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느낌,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기준들은 그렇게 아기에서 아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면서 완성해 나가고 있다.소설가 박현숙씨의 6만 시간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6년이라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되돌아 보면 그 때 학창시절이 가장 많은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상상하고, 또래 아이들과 공유했던 모든 것들이 어른으로 가는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누구는 사회의 이바지가 되는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고, 누구는 사회의 어둠이 되는 검은 그림자가 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나서일과 영준은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영준이라는 아이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괴물이다. 영준이 내면의 숨겨져 있는 미움은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는 동기였다. 현대 사회의 수많은 미디어와 제도, 문화,그리고 도구들,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쓰여질 때와 나쁜 방향으로 쓰여질 때를 기억해 볼 수 있다.물론 영준은 그 도구를 나쁜 방향으로 쓰고 있었다. 신 의원과 영준,영준과 3502호에 살고 있는 묘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 여인, 둘의 관계의 중심에 나서일이 있었고, 또다른 인물 영준이 있었다. 영준은 3502호 여성을 증오하고 있었고, 존재를 부인하고 싶어했다. 그것은 영준 스스로 일탈의 원인이 되었고, 주변 아이들에게 민폐가 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영준 스스로 자신의 일탈이 신의원에게 복수한다고 생각하였고, 신의원은 그런 영준의 일탈을 보호한다.그것이 바로 영준이 괴물이 도리 수 박에 없는 이유였다.


서일은 그런 영준의 성향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서일 또한 영주의 피해자였다. 황설아도 영준의 피해자였다. 영준과 서일이 다른 점이라면, 영준은 복수를 선택하였고, 서일은 복수를 선택하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한국이 올라가던 때에 태어난 서일이 복수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은 내면에 분노의 씨앗을 쌓아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내 주변 사람을 다치지 않아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생각들은 서일 스스로 침묵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일갈하게 된다. 이 소설은 과거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다시 상기시키게 된다. 영준이 엄석대라면, 서일은 한병태였다.우리의 일그러진 영웅들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자화상이며, 한병태는 일그러진 행동을 일삼는 엄석대의 모습을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서일이 침묵을 선택한 것처럼, 한병태도 침묵을 선택하였으며, 그로 인해 괴물은 우리 사회에 암적 존재로 남아있는 또다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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