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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웨이 아웃
스티븐 암스테르담 지음, 조경실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아버지가 죽고 아직 장례식도 치르지 않았을 때,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혼자서 연구해왔다.아버지가 죽기 전 여름, 우리는 다 같이 차를 타고 공원의 그 도로를 지나갔는데, 그때 나는 혼자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46-)
내가 처리해야 할 다음 환자의 이름은 레오, 나이는 아흔 살, 여든 여섯 살의 여자친구 미르나가 그 자리에 함께햤다.그들과 나눈 인터뷰 내용은 경이로움으로 가득했다. 두 사람이 그토록 오래 산 일, 서로를 만난 일 등, 모두가 그들에게는 기적이었다. 요리사였던 레오는 만두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 은퇴할 무렵에는 호주 서부에 차이니즈 레스토랑을 세 개나 갖고 있었다. (-168-)
"만약 몸에 약물을 투여하는 화학 요법을 시행해야 한다면 그런 일을 결정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어떤 의사는 얘길 꺼내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음 치료일정을 잡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누구도 방관자처럼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만 있지 않는다고요. (-262-)
갑자기 그녀의 목 근육이 풀리면서 갸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다.수년간 바이올린을 펴고 연주하던 바로 그 곡이었다. 그녀가 미처 끝맺지 못한 문장의 나머지가 폐에서 흘러나왔다.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푸우'하고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난다는 것은 알수 있었다. (-326-)
한 손은 엉덩이에 ,한 손은 어깨에 대고 나는 어머니를 침대 한 편으로 밀었다.그러자 어머니는 안 밀려나려고 마치 염소처럼 몸을 뻗대며 이까지 악물었다. 그래도 끝에 보호난간이 있어 떨어질 일은 없었기에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어머니를 밀어 공간을 만들었다. 어머니도 포기했는지 숨을 헐떡아며 가만히 있었지만 두 발은 아직 침대 중앙에 있어 비스듬하게 누운 상태가 되었다. (-429-)
대한민국은 여전히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은 국가이다.그래서 여전히 말기 암환자에게 살아날 가능성이 낮은 상태에서도 항앙제와 수술,방사선 치료를 통해 연명치료를 하고 있다. 여전히 사람의 삶과 죽음을 살아있는 인간이 결정한다는 것에 대해서 반감을 표시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으로 보자면, 우리는 삶에 대한 행복과 가치에 대해 어느 정도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인가 곰곰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그 과정에서 이 소설 스티븐 암스테르담의 <이지 웨이 아웃>은 안락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특히 이 소설은 주인공 에반의 입장에서 다양한 환자를 마주하는 그 과정에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약물을 투여하여, 사람의 안락사를 돕는 일에 대한 경건함을 얻게 된다.
하지만 에반은 병원에서 합법적인 안락사를 그만두게 된다.누군가의 죽음을 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에반이 선택한 것은 불법적인 안락사이다. 동성애자였던 에반이 재스퍼가 되어서 남성 론과 사이먼과 사랑을 속삭이면서, 사람의 죽음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소설은 바로 에반이 마주하게 되는 심경 변화의 흐름들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으며, 타인의 죽음을 돕는 일과 나의 가족의 죽음을 돕는 일이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조여주고 있다. 즉 타인의 죽음을 도울 때는 객관적이면서 합리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의 가족의 안락사를 도울 때면 결코 평온한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안게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책한 권을 읽으면서, 또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가족 중 누군가 죽음을 맞이 할 때, 우리는 그 죽음에 대해서 호상이라 말할 때가 있다.여기서 호상이란 자연스러운 자연사이며, 큰 고통없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그것이 유가족을 위로하는 의미로 쓰여지지만 현실적으로 보자면 유가족을 배려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책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바로 죽음의 순간을 만나게 되는 환자 레오의 여자친구 미르나의 자화상이다.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과거의 반복된 일상들을 죽기 직전까지 하는 것이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다. 마치 나는 지금 죽을 것처럼 살아가지만, 결코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일상 속에서 우아하게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