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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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세사람이 내 곁을 떠나갔다.그 이후로도 내게 난관은 있었고 그 이후에도 죽음은 있었으며 때로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이별도 있었지만 그해처럼 이별이 내 존재를 휩쓸고 간 적은 없었다.아마도 그 이유의 대부분은 나의 젊음이 대답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때 나는 신부 서품을 앞둔 베네딕도 수도회의 젊은 수사였다. (-9-)


그날 밤 나는 화정을 지운 그녀의 눈 밑으로 엷게 분포되어 있던 주근깨 한 스푼과 갓 반족한 밀가루 덩이같이 곱고 부드러운 그녀의 손과 어리광 섞인 그녀의 목소리를 데리고 내 방으로 왔다.이번에는 불을 끄기 전에 그녀가 꽉 잡았던 내 손을 바라보았다.내 손을 바라본 것이 언제였던지 기억나지 않았다. 소희의 손이 내 왼손이라고 치고 그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아보았다. (-99-)


소희의 밝은 웃음 때문이었을까 .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장난치듯 말했다. 그럴 생각이 있었던 것은 떡히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냉면에 대한 일종의 농담이었다.그런데 그 순간 나는 보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아 웃음에서 경직으로 ,화사함에서 칙칙함으로, 꿈에서 현실로, 하늘에서 진탕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은 이유를 다 알 수 없었는데 그녀가 말했다.
"나보고 ,냉면집 사모님이 되라고? 냉면집?" (-204-)


유리창 너머로 그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랑...날마다 마지막을 각오하게 하는 이름...이제 사랑이 끝났으니 마지막 같은 건 더 각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라는 말로 겨우 나를 달래보았다.실제로 나는 그 이후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337-)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는 2010년 쯤 출간된 저서이며,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된 소설이다.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베네딕도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베네딕도 수도원에 있었던 주인공 정요한과 미카엘,안젤로가 있었으며, 그들의 중심에 소희가 있었다. 세명의 남자 수도자, 즉 베네딕도 수도우너의 수사가 될 사람들과 그 중심에 있는 소희.이들은 서로에게 잇어서 운명 공동체였다. 주인공 요한은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로서 , 관찰자 입장에서 소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연히 끌리게 된 소희를 통해,자신의 운명을 검증하게 되었으며,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겹쳐 놓게 된다.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 그들은 섷로 사랑하였지만 엮일 수 없는 불행이었다. 그건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미카엘과 안젤로 때문이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 자신의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당사자는 그런 마음이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 뒤에는 누군가의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무이다.그건 살아있는 정요한이나 소희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선택과 결정이 그로 인해서 죽음을 잉태한다면, 그들은 마읍 속 언저리에 죄책감을 간직한 채 삶은 정체되어지는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해왔던 그 모든 것들이 물거품 되는 순간이며, 소희가 떠나게 된 이유였다. 줄거워도 즐겁지 못하고, 쓴 웃음을 짓게 되는 건 어떤 사물과 사람,장소가 무언의 기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아픔 속에서 스스로 견뎌야 하는 두 주인공, 정요한과 소희는 서로 만남과 이별 속에서 교차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이 소설은 수도원을 배경으로 침묵 속에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적임 모습들이 뭉너지게 될 때 살아난 사람과 살아남지 않는 사람들의 서로 겹쳐지는 삶이 나타나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지 고민해 볼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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