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류근 지음 / 해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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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란 그리하여 모름지기 견디는 사람이다. 비도 견디고, 사랑도 견디고, 이별도 견디고, 슬픔도 견디고, 쓸쓸함도 견디고, 죽음도 견디고, 견디고 견디어서 마침내 시의 별자리를 남기는 사람이다. 다 살아내지 않고 조금식 시에게 양보하는 사람이다. 시한테 가서 일러바치는 사람이다. (-71-)


나는 속으로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럼 측근도 아닌데 도대체 누가 바쁜 입을 바쳐서 나를 씹고 흉을 볼 수 있다는 것인가. 원래 가까운 사람이니까 피해를 끼치고 배신을 하고 상처를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사기당한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라.다 친구에게 당하고, 형재에게 당하고, 선배에게 당하고, 후배에게 당하고, 약혼자에게 당하고, 사돈의 팔촌에게 당하고, 요즘은 페친에게까지도 가끔 당하고...9할이 측근에게 당한 사람들이다. (-95-)


그런데 술집엔 왜 가느냐고? 시와 사랑과 자유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고 나는 용기 있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데,나의 술안주가 시와 사랑과 자유의 먹이가 되는 '상상력'이 되길 기대하고 고대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왠걸? 나는 일 년의 이백구십팔 일은 그만 내가 꼬질꼬질 모아두었던 상상력의 끄트머리마저 술값으로 빼앗겨 버리게 된다. (-192-)


나에게 순 쓰레기 같은 일들이 몰리고, 순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생각해보면 다 내가 쓰레기장 같은 기운을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장 맹글어놓고 왜 쓰레기 버리냐고 분노하고 부르르 떨고 꼭지 돌리면서 뚜껑 여는 짓, 어리석기 짝이 없다. (-195-)


아무리 의연한 척, 아무것도 아닌 척, 가벼운 척 했어도 속으로 혼자서 감당했어야 했을 공포와 의로움이 얼마나 깊었을까, 자식도 ,반려자도, 하느님도, 결국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의 빛과 그늘을 다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깊고 높은 울음을 견뎌야 하는 것일까. (-243-)


현대인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새삼 억울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억울함의 근원은 내 안의 분노였다. 분노는 나 자신을 좀 먹고 있다. 어제와 다른 나,오늘과 다른 내일, 일상의 흐름 속에서 내 삶의 편린들은 점차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명분을 만들어내고, 삶과 죽음 그 사이사이에 보여지는 장애물들은 나의 발목을 자빠뜨리게 된다.우리가 억울한 이유는 내 앞에 놓여진 것들에 대해서 ,상황에 대해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비우지 못하고, 망각하지 못해서 아닐까 생각되었다.성실하게 살아가고, 근면하게 살아가고, 노력하면 모든 게 다 잘 풀릴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들은 언제나 나에게 따스한 선물이 아닌 차가운 배신감이 먼저 나타날 때가 있다.그런데 우리 스스로 마음 언저리에 배신이라는 개념이 있기에 서로 조심하고, 서로 보듬어 안고 살아가는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여기서 우리가 억울한 원인을 보면 ,측근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돈을 떼어 먹고, 대로는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거의 대부분 측근의 우발적인 행동 때문이었다.거의 90퍼센트에 가까운 측근의 배신은 내가 쌓아놓은 모래성을 한 순간에 어그러뜨려 놓게 된다.그것이 억울하였고, 공들여 놓았던 시간들이 억울하게 된다.그런데 그 순간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관찰하고, 세심하게 다듬으면 하나의 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들이 때로는 쓰레기가 된다. 특별한 경험, 상처와 고통의 나날이 지나게 되면, 그것들은 남다른 시로 재탄생될 수 있다.돌아보면 우리가 말하는 수많은 위대한 시인들은 시련과 고통을 한 번 이상 겪어온 셈이다.그 고통과 슬픔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잇지 않고, 새로운 가치로 승화시킬 때 그의 예술적 가치, 문학적인 가치는 빛을 발하게 된다.이 책은 사랑을 이야기 하면서도, 사랑의 저 너머에 감춰져 있는 망각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결코 놓칠 수 없는 가치들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널려 있었다.놓치지 않고 , 벗어나지 않는 것,넘어지더라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된다.도전하지 못하고,용기내지 못하면서, 분노만 자아내는 것은 의미없는 행위였다.분노하기 전에 내가 있는 상황에 대해서 들여다 보고, 현재를 직시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나를 새롭게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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