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이샤의 첫날밤에서 사무라이 할복까지
박동균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9년 8월
평점 :
"어쨌든 사무라이의 칼날 앞에서는 욕이 발달할 수 없는 사정을 헤아려 왜 나라에 가면 사무라이 앞에서 욕하지 마라.또 하나 명심해야 할 일은 조금이라도 사무라이의 칼을 건드리지 마라.그 칼은 단순한 칼이 아니라 영혼이 깃든 신물이다. 일본인들은 칼을 조상 모시듯 한다.사시미 뜨는 주방장도 회칼은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다. 사무라이를 만나 어쩔수 없이 싸움이 벌어지면 일단 도망가라." (-29-)
미녀의 대명사 하면 오노노 고마치를 일컫는데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9세기 전반에 일본을 주름잡던 여인이지요.조선의 황진이처럼 뛰어난 시를 짓는 여류 가인으로 고대 시가집인 고금집에 18수가 수록된 것을 비롯해 100여수나 되는 시를 남긴 사람이에요. 전하는 바로는 그녀는 18세에 궁중에 나가 궁중의 제일가는 미녀가 되어 천황의 총애를 받았다는군요. (-91-)
목말라 죽어가는 자국의 병사들에게 돈을 받고 물을 팔고 인육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돈을 받고 쌀을 팔아대는 일본 상인들의 엽기적 정신 구조가 그곳에 있었다. (-230-)
"여자가 도망갈 이유가 없으니 일본에는 기모노가 발달할 수 밖에 .너,기모노 입고 여자가 뛸 수 있다고 생각해? 절대로 못 뛴다.기모노는 몸을 꽉 조이잖아.입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그런데 너네 조선은 전쟁이 터졌다 하면 모두들 도망가야 해.그러니 여자들 한복이 발달한 거야.입는데 시간도 걸리지 않기 때문이야.한복 입고 뛰는 것은 물론이고 마라톤에다 허들 경기도 할 수 있어.어쩌면 세월이 흐른 후에 한복입고 디스코도 추고 덤블링하는 여자 아이들도 보일거야."(-264-)
"여성들의 신발인 조리를 신을 때 게이샤는 반드시 신어야 하지만 유녀는 맨발로 있어야 해요.이건 불문율이죠.그래서 1차를 즐긴 남정네들이 신발을 보고 버선이면 '패스!' 맨발이면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하는 것이죠.하지만 차차 몸을 파는 게이샤가 늘어나다 보니 버선을 신었다 벗었다 하지요.예전 같으면 게이샤나 유녀나 다 입고 있지만, 기모노를 매는 띠를 오비라고 하는데 그 오비의 묶은 매듭이 앞에 있으면 유녀, 뒤쪽에 있으면 게이샤라고 하지요."
"일설에는 유녀는 언제나 남정네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앞쪽에 매듭이 있고,게이샤는 아무하고나 몸을 섞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뒤쪽으로 매듭을 짓는다고."(-100-)
일본과 한국사이를 언급할 때 '원수' 이 하나의 단어면 충분할 듯 싶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역사적으로,문화적으로 불편한 관게이면서, 밀접한 관게이다.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서로 엮여 있다 보니 충돌할 일들이 잦아진다.그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두 나라의 인구 대부분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면서, 서로 수출과 수입이 오가는 가운데 ,두 나라가 대치하면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는 이유는 우리와 일본의 사이가 어떤지 짐작하게 되는 경우다.하지만 일본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일본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서 질문하게 된다.닮으면서도 이질적인 문화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일본은 묘하게 우리를 자극시키고 있다.
관대한 성문화,사무라이 정신.이 두가지가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데 빠져서는 안될 부분이다.이 책은 일본과 조선의 역사적인 충돌 임진왜란을 전후로 하여 대화체의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며, 500년전 과거의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과거,현재 ,미래를 오가면서 두 나라의 특징을 비교한다.특히 일본은 다양한 신을 모시고 있으며, 신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면,일본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대한민국에 역사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는 두 나라의 갈등의 결정적인 이유였다.이 책에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귀무덤, 코무덤을 만들었던 일화들이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으며, 일본의 게이샤와 유녀의 차이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었다.특히 일본은 사무라이 전신을 빼놓을 수 없다.칼에 신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목숨처럼 귀하게 여긴다.또한 가미가제 특공대처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도 사무라이 정신이 깃든 일본의 특징이다.섬나라면서, 그들의 폐쇄적인 역사관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때로는 명확한 선을 긋는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을 지배하고 있다.조선이 문의 나라였다면,일본은 무의 나라이다.그래서 일본이 피터지게 싸울 거라 생각하는데, 도리어 문의 나라인 조선이 더 치열하게 싸운다는 것을 본다면, 우리나라도 일본 못지 않게 엽기적인 문화관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