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도 심장이 있다면 - 법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
박영화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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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 피고인의 죄명은 살인과 살인미수였다.그는 동거녀와 그녀의 부모를 흉기로 살해하고 동거녀 여동생의 가슴을 찔러 장애가 남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해를 입혔다.겉으로 드러난 행위론 여느 흉악범 못지 않은 악행이라 사형이 마땅해 보였다.그러나 서건의 내막을 살펴보니 사형선고를 당연시하기엔 다소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 있었다. (-30-)


나는 정의로운 법조인이 되기를 바라고 노력하지만 오로지 '정의롭기만 한'법조인이 되기는 원치 않는다.'정의롭기만 한 인간은 잔인한 인간'이라던 영국시인 바이런의 말처럼 정의롭게 법을 집행하면서도 따뜻한 심장을 지닌 ,인간을 이해하고 보듬는 법조인이고 싶다.법은 애초에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113-)


"판사는 사건 현장에 직접 있지 않앗으므로 수사기록과 증인신문 등 여러 증거를 종합해 공소사실의 진위를 판단할 수 밖에 없어요.그결과 우리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요.깊이 고민한 결과이긴 하지만 우리의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으니,꼭 항소해 항소심에서 충실히 변론하고 다시 판결을 받아보세요."(-195-)


소송에 휘말린 여러 사람에게 화해를 권고하며, '어쩌면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자신의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판사가 알아주고 보듬는 게 아닌가'하고 나는 생각했다.빌려준 돈 100만원을 돌려받으려고 몇 배의 돈과 시간을 투자해 소송하는 이유는, 최소한 법으로라도 본인의 억울함을 인정받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그래서 그런 소송 당사자들의 마음을 읽는다면 사건은 의외로 쉽게 풀리기도 한다. (-237-)


이에 반해 판사는 사건마다 옳은 판단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고 ,한 사건을 가지고 계속 판단이 서지 않아 오랜 시간 고심하는 경우도 있다.양심에 따라 법대로 판결했다면 설령 판단이 잘못됐다해도 법적 책임을 지지는 않지만, 판결은 한 사람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판사는 스스로 그 책임의 굴레를 지고 간다.그러니 항상 옳은 판결을 하려 고민하고 고뇌할 수 밖에 없다.(-269-)


이 책을 읽은 시점이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이 있었던 직후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기까지 한달 동안 우리는 수많은 거짓기사와 사실에 근거한 기사가 도배되다시피 언론에 의해 재탕되었으며, 조국 법무부 장관의 치부 뿐 아니라,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의 치부까지 들추게 된다.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의가 사라지고 민주가 사라지는 현상을 느끼게 되었다. 법이 바로서야 사회가 바로선다는 말이 있건만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여전히 미흡하고 요원하기만 하다.더 나아가 판사,변호사 ,검사는 사회의 엘리트 계층으로서 그 무게감과 책임감이 주어지지만 현실은 사회의 기득권을 형성하면서,하나의 권력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묵묵히 법조게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이들이 있다.이 책을 쓴 박영화 변호사도 그런 케이스였다.


이 책에는 부장판사 박영화의 법조인으로서의 고민과 고뇌가 묻어나고 있다.판사, 변호사,검사는 각각 다른 위치에서 피고와 원고를 바라보고 있으며,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곳을 선점하려고 애를 쓸 대가 있다.특히 검사가 칼이라면, 판사는 칼집에 해당되며, 피고와 원고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긴장과 두려움,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게 된다.하지만 '핑계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처럼 범죄를 저질렀지만 핑계나 사유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그로 인해 그들을 법의 관첨으로 판결해야 하는 판사의 고뇌는 깊어진다.


모르면 우리는 상대방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곤한다.판사의 역할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그들의 고뇌를 느끼지 못해서 우리는 때로는 그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검사가 판사에게 항명할 수 있고, 때로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특히 전세계 나라중 막강한 권력을 지닌 검사는 때로는 오만하고 무례할 때가 있다.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검사는 판사와 대척점에 서있다.반면 변호사는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자유로운 위치이다.그들은 수임을 받을 수 있고, 때로는 안 받을 수도 있다.뉴스를 보다 보면, 흉악한 범죄에 연루된 범죄자들의 변론을 맏지 않겠다 하는 변호사가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칫 변호사로서 변론을 받다가 변호사 스스로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력 주에 두개가 눈에 들어온다.안동지원과 영덕지원에서 일했던 3년간의 시간이다.서울에서 일하던 저자는 지역에 와서 재판을 도맡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흉악한 범죄자들보다는 생계형 범죄, 사회적 약자들의 범죄와 마주하게 된다.법의 관점에서 정의롭게 판결내리기에는 한사람을 처벌함으로서 나머지 가족들에게 또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즉 우리 사회의 관계가 법조인들이 판결과정에서 원칙과 절차에 있어서 흔들릴 수 있다.하지만 저자는 언제나 원칙에 다라서 법적 판단을 하려고 애를 썼으며, 그과정에서 사람을 위해서 자신이 맡은 역할이나 사명감을 가지게 된다. 그 범죄의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주변 인물들을 동시에 들여다 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 판사가 사라질 거라 말하는데,만약 그럴경우 사회적인 문제나 부작용은 겉잡을 수 없다.법의 관점에서 원칙과 절차가 필요하면서, 그 과정에서 관용과 유연성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법이 사람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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