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 코레아
김세잔 지음 / 예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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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는 없다.우리는 자연의 일부일 뿐,우주의 먼지처럼 가벼운 존재이지만 인간은 그 존재의 참을 수 없는 허구를 넘나들 수 밖에 없어 그토록 욕망에 집착하는 건지도 모른다.인간태생의 원죄에 신이 인간을 비난하고 지배하게 된 동기와 불합리성에 대해 의문을 부여하고자 이번 작품을 쓰게 되었다."(-13-)


"뽀삐뽀삐!"
구급차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가물거리는 의식 너머 사이렌소리가 끊겼다.그리고 눈을 떠보니 나는 어느 사내,아니 어떤 물건이 되어 있다. (-24-)


"L'enfer,c'est les autres. (지옥, 그것은 타인이다.)" 

사르트르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그의 말이 옳다면 지상에는 75억에 육박하는 지옥이 있다. 하늘에 올라왔지만 여기에도 지옥이 없진 않다. 탑승객이 370명 정도 되니 승무원 포함하면 400여 명의 자재적인 지옥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 (-109-)


얼떨결에 그의 이름을 불렀는가 싶어 떨렸다.
"이곳에서의 일은 훨씬 복잡하다.제한적이지만 이곳에서의 나의 역할을 다하고 있냐고 묻는 거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다만 인간 세상엔 내려갈 수 없다.그대가 나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진..."(-212-)


한국의 비극을 막지 못했다.윤숙과의 약속을 이행했다고 자신할 수 없다.
'가마에 민비가 타고 있다' 미처 그 말을 외치기 전에 누군가 말했고, 적의에 가득 찬 민비는 여전히 과거의 시간대에 살아있다.화려한 샹들리에가 천장 가득 자리한 고급 레스토랑,마리엔은 시나서 떠들었다.
'청일전쟁은 물론이고 러일전쟁도 없어졌어.대한민국은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 되었지." (-282-)


'번민과 편견에 물들어 순수할 틈이 없는 것이 마음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죄는 아닐진대,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힘들다.긴 여정 끝에 마침내 나의 아파트 현관문 앞에 섰지만 낯선 공간에 갇힌 것만 같다. 장기간 집을 비운 터라 어쩌면 도둑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293-)


잠을 깨어보니 품 안에 단추가 없는 것이 느껴졌다.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니 마리엔이 전화통화를 희망하며 몇 번이고 기다리고 있다.
"무슨 일이야?"
"잠자다 변사체로 발견되는 건 아니겠지? 네가 집에 들어간 지 삼일이 넘었어."(-300-)


인문학과 역사,우리의 삶과 불가분한 관계를 맺고 있다.우리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할 때,스스로 과거를 돌아보고, 그 안에서 힌트를 얻게 된다.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의 역사와 연결되며, 개인으로 보면 개인의 운명과 개인의 과거와 엮이게 된다. 김세잔의 소설 <그랑 코레아>는 개인의 역사와 나라의 역사를 유기적으로 엮어가고 있으며, 그 중요한 역사를 마주할 때 느낌이 어떨지 상상하게 된다.


역사란 그런 거다.어떤 역사적인 순간이 스쳐 지나가게 되고, 찰나의 순간이 될 수 있다.그것이 시간이 지나 굵직굵직한 사건 사고라 하더라도, 그 사건이 일어나는 현 시점으로 보자면 사소한 것이다. 시간적인 순간,현재를 마주할 수 있다면, 나 스스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보고 싶어진다.역사 속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그 순간 말이다. 작가는 바로 그러한 우리의 욕망을 작가의 상상력과 엮어나가고 있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었던 벨은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일로 과거로 시간이동하게 된다. 현재의 사람과 과거의 사람으로 대체되는 게 아닌, 현재의 사람과 과거의 물건으로 대체되고 있다.그 과거의 물건이란 역사적 순간을 앞에서 가까이 목도한 드골 장군이 입었던 제복의 단추였다.생각하는 사람이 아닌,생각하는 물건이 된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과 관계를 볼 수 있으며, 비밀이 완전하게 보장되며, 그 역사적 순간을 객과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드골장군의 단추가 되면서 ,드골장군이 만난 사람들을 기억하게 되었고,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선택과 결정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설은 바로 소설을 읽는 독자의 욕망을 투영하고 있다.1942년 과거의 시대 속 하나의 물건이 되면서, 그 물건은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 역사의 증인은 비극의 순간을 만나게 될 때 어떤 기분이 들것인가, 역사 교과서 속 안타까운 사건 사고들,그 사건 사고들이 역사적인 변곡점이나 전환점이 될 때 그것을 바꿔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민비라 불리는 명성황후의 죽음이 그러했고, 6.25 동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일어난 사건 사고들처럼 말이다.나치 독일과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인이었던 드골 장군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서, 그 어떤 역사적 과오가 될 수 있는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잘된 선택으로 바꾸고자 한다.소설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원흉이 되었던 명성황후의 시해장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친일파 문인이었던 모윤숙,그들이 서로 그 시대를 사라가면서 서로 엮이게 된 역사적 흐름을 드골 장군이 입었던 단추를 통해 재확인할 수 있게 되고,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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