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피고있는 꽃처럼 있을 테니
오연희 외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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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사는 일

길가에 핀 자그만 들꽃애
사랑스러운 눈길 한 줌
던져주는 일

세간에 휩쓸려도
나를 잃지 않고 사는 일

꿋꿋한 두 다리로
힘차게 걸어가는 일

사람들의 타박 속에서도
순수를 지키는 일

어떤 풍파를 겪던
스스로의 편을 올곧이 들어주는 일

나로 사는 일
참 어렵다. (-31-)

어른

저어기
어른의 껍질이 걸어간다

흐느적흐느적
자신에게 맞는 껍질이 무언지도 모른 채,
양 어깨를 애써 빳빳이 세우고
큼지막한 껍질을 둘러 업었다.

그 속에 작은 어린애는
껍질이 너무 무거워 매일을 서글피 운다.

하지만 껍질은 두꺼워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저어기
어른의 껍질이 기어가고 있다

흐느적흐느적 (-42-)


아버지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술에 취해 비틀비틀 되던 아버지를
창피하다 못해 숨어 버린 아들

졸업식날 허름한 옷차림에
아버지를 외면해야만 했던 아들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를 알게 되니
작은 언덕으로 변해 버린 아버지

술한한 뿌리며 목놓아 불러봅니다.

이보소,아버지요 죄송합니데이. (-114-)


아버지

힘들때마다 생각 나는 당신
죽을 것 같던 그날도 난
당신의 울타리에 찾아갔죠
하지만 매몰차게 내쳐지고
울분을 참지 못한 나는 
차갑게 뒤돌아섰죠.

어느날 새벽에 걸려온 당신의 전화
뜬금없는 말씀을 하시고는 당신에게
차갑게 툭툭 말을 건네고
그 뒤로 한참 잠을 뒤척였어요.

청천벽력 같은 부고 소식
죄책감에 엄마를 못 보겠어요.
당신은 가시면 그만이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책임하게 가시면 어떡하냐고요. (-152-)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열달 동안 어머니의 뱃속에서 머물다 태어난 아이는 영문도 모른채 세상 속에 마묻혀 버렸다.그렇게 아이는 부모님의 사랑을 얻으면서 성장하게 된다.하지만 우리의 삶이 언제나 사랑만 있는 건 아니었다.때로는 미움도 있었고,때로는 고통도 있으며, 때로는 서운함도 우리 안에 있게 된다.살아가면서,예측불가능한 것들이 나타날 때 얻게 되는 좌절과 슬픔과 절망스러운 순간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후회를 남기면서,스쳐지나가게 된다.


이 책에 있는 시 속에는 우리의 삶이 있었다.때로는 서운하고,아프고, 질투한다.나이가 먹어가면서,어른으로서 책임과 도리를 다해야 하건만,우리는 껍데기만 어른이며, 아이의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그래서 더 많이 후회하고,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질투하게 된다.내 안의 감정들을 표출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엉뚱한 것에 표출하는 어리석은 어른이 우리 안에 있다.그 하나 하나에게서 시로서 담아내고 있으며, 내 삶의 작은 편린들을 상상하게 되고, 깊이 느낄 수 있다. 타인의 아픔을 통해서 나의 아픔을 상상하게 되고,타인의 부모님을 통해서 나의 부모님을 상상하게 되었다.시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의 상상을 증폭시켜 나가고 있다.어른이지만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많고, 어른이지만,여전히 흔들리면서 살아가게 된다.상처을 입으면서,그것을 스스로 해소하지 못하고,덜어내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들이 시 속에 담겨져 있다.


책에는 아버지에 관한 시가 나온다.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불편한 존재이다. 그들의 말 속에 있는 가시가 나에게 상처로 쿡 들어가기 때문이다.사랑보다는 서운함을 먼저 느끼게 되고, 기쁨보다는 슬픔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또다른 모습이었다.그럼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였다.아버지의 부재,아버지의 마지박 순간 남겨놓은 마지막 기억은 후회와 아픔의 씨앗이었으며, 우리 스스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후회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행복이다.그 누구도 가로챌 수 없는 인간이 가져야 한 본질적이면서,절대적인 요소,행복의 무게감을 다시 한 번 더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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