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여자들
설재인 지음 / 카멜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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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순 아줌마를 만나면, 정말이지 십여 년 만에 만나면,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나는 수없이 상상하고 그려 왔다.울게 될까.웃게 될까.왜 우리 엄마를 버렸어,하고 주저앉게 될까,왜 나를 떠났어 하고 가슴을 치게 될까.이민ㄱ간 후 단 한번도 나와 어마를 찾아오지 않을 만큼, 엄마의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을 만큼, 그렇게 무정해야 했어,그렇게 바빳냐고 ,하고 소리를 지르게 할까. (-16-)


한국에서의 이혼은 완료가 됐어.그런데 태국에서도 이혼신고를 해야 해.리나가 완벽하게 다시 싱글이 될 텐데,한국에서의 판결문이며 협의이혼확인서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아무도 ,그 어느 누구도 한국 땅에서 일러 주지 않았어.태국에 와서야 알게 된 거야.협의이혼의사 확인신청서와 협의이혼확인서가 각기 다른 서류였고 리나로서는 처음 작성한 확인신청서가 손에 쥔 전부였지. (-45-)  


한게 없으니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재인이 전화하던 시간은 한참 지나 있었다.그 사거리에선 아직도 수많은 차들이 서로 악다구니를 쓰며, 횡단보도에 발을 딛는 사람을 못 본 체할 것이었다.재인이 투덜거릴 땐 그렇게 잠이 잘 오더니,자정을 훌쩍 넘겼는데도 머리가 말똥말똥했다. (-84-)


차장님 집에 들어서는 순간 정신이 쏙 빠져 버리는 줄 알았어요.눈알이 팽글팽글 돌더라고요.이런 집에서 어떻게 미치지 않고 살 수 있는지,어떻게 그렇게 냉정하고 자로 잰 듯한 행동만 할 수 있는지,아니, 이런 집에 살아서 그런게 가능한 걸까? (-102-)


나는 술이 셌다.고등학생인 걸 뻔히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술집이 시내에 한 군데 있었다.청주시의 온 고등학생들이 ,거기 다 모여 술을 마셨다.가끔은 영업정지를 당하기도 했는데 그게 휴가라고 여길 만큼 수많은 고등학생들이 술을 팔아 주었다.들어가면ㅅ거 절대 주위 둘러 보지 마,눈 갈아서 바닥 보고 들어가.눈 마주치면 바로 야려봤다고 시비 걸거든.선배의 조언을 들으며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나는 그곳의 단골이 되었는데,소주 두 병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마시고 양치질을 한 후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169-)


서른 살의 유하와 스물 세 살의 수완은 그날 전화번호를 교환했으며, 세번째로 함께 술을 마신 날 유하의 방에서 잤다.
나 철음 한 거에요.
말도 안 되네.
진짜에요.
순수한 척 하지 말죠.
유하 씨.손님이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소개팅하고 애프터하고,하는 비용도 없고 좋네요.뭐.

유하의 말에 수완은 ,그런 농담은 하지 말아요.하고 갑자기 엄한 표정을 짓기도 했었다. (-224-)


단편 12편으로 이뤄진 <내가 만든 여자들>이다. 이 책은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나와 특목고 수학 선생님이었던 저자가 자신의 일을 내려 놓고 , 소설가로서 첫 발걸음을 뗀 첫 소설이자 첫 작품이다.돌이켜 보면 저자의 삶은 작은 일탈의 연속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선택은 큰 파문을 일으켰을 것이다.서울대라는 스펙에 안정적인 학교에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그것을 내려놓고 다른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가벼운 말을 하는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어리석은 선택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고,그럼으로서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탈출구가 필요했다.어쩌면 한 번의 실패가 또다른 실패의 연속이라 생각한 것은 아닐런지,세상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사람에게 세상의 혹독한 추위는 그녀가 견디기에는 힘든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이력을 상상하게 되면서, 소설 한편 한 편을 읽어나가게 된다.12편의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우리의 삶의 내밀한 부분들을 짚어 나가고 있다.그건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인생의 편린들이다.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서서 당당하게 걸어가는 경우도 있다.그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느끼게 되는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될 때 새로운 것을 찾게 되고, 그 안에서 행복과 희망을 얻고 싶어한다.특히 이 책에는 우리 일상 속에서 특별한 사람들을 꺼내고 있었다.한국인과 결혼한 태국인 여자,이혼하게 되지만, 그 과저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스스로 풀어나가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쉬운 것이 그녀에게는 어려운 것이었고,힘든 것이었다.쉽게 풀 수 있는 것들이 돌고 돌아서 매듭은 계속 꼬이게 되는 것이다.이런 부분을 보면 우리는 저 태국인 여성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가 반문하게 된다.정보의 불균형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차이로 인해 갈등과 반목을 양산하게 된다.그것이 세대차이가 될 수 있고, 한국인과 외국인간의 이질적인 문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더 나아가 같은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보면, 소설에서 나오는 스토리가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결벽증이 있는 사람과 허술한 사람의 만남,그럼으로서 예기치 일들은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다.그것이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때로는 억울함으로 연결될 수 있다.저자의 삶과 관찰이 반영된 소설은 그렇게 단편 12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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