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을 다시며 그대를 그리다 육감프로젝트 1
김현정 지음 / 렛츠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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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드세요."
"잘 먹고 있다.얼른 먹어."
첫째였다. 첫째는 나를 잘 짜랐다.딸은 아니니, 며느리처럼 살갑게 와주는 것은 아니었지만,무덤덤하게 나에게 말도 잘 붙이곤 했다.둘째와 셋째는 나보다도 자기 엄마를 그렇게 좋아하고 따른다.서운하지는 않았다.(-21-)


너무 물컹해서도 안 된다.너무 물컹하면 파인애플에서 씹었을 때 나오는 과즙이 신선하지 않다.베어 물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단맛이 아닌, 시간이 오래돼 상한 듯 퍼져버린 비릿한 단맛이 혀끝에 아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갓 잘라서 바로 먹는 건 더더욱 안 된다. 신맛이 강하기도 하고, 숙성되지 않은 파인애플은 그리 달지 않기 때문이다.(-67-)


엄마와 아빠는 우왕좌왕이었다.항상 입으로 가져가는 내 습관 덕에 크레파스도 무공해 크레파스라며 아이들에게 유해하지 않은 거로 샀다고 말했지만, 정작 먹는 모습을 보니 당황한 것 같았다.나는 울면서도 크레파스를 자시 쥐고서는 입에다 넣고 빨았다가, 울고, 빨았다가 울었다.외출 준비를 하는 부모님은 나의 자지러지는 울음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내가 무엇을하고 있는지 보지 못했다. (-158-)


확인한다.느낀다.정말이 이것이 나일까? 거울 속에서 바라보는 동그랗고 ,조그마한 내가 낯설다.나는 무엇인가를 보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그리고 그걸 실제로 복합적으로 느끼고 있는 내가 신기했다.매일이 즐거웠고,항상 새로웠다. 나는 이것을 많이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그 순간을 느끼고 까먹는다.(-172-)


이 책은 소설인지,에세이인지 처음엔 구분하지 못하였다.돌아보니 이 책은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었다.현실과 거리가 먼 우리의 상상 속 저 너머의 아기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으며, 온전히 작가의 상상 속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어른과 아이의 매개체, 작가는 이 매개체를 만들어 보고 싶었나 보다.아기 동동이와 60이 넘은 할아버지,사람의 생과 사, 죽음은 또다른 탄생이 된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의 마음 속에 느껴지는 수많은 감각의 향연들, 아기가 처음 발달한 것은 후각과 미각이 아닌가 싶다.태어나면서,거울을 보면서, 자신이라는 걸 인지하게 된 아기의 정서적인 발달은 부모님과 아기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시작된다.아직 언어가 발달하지 않은 아기의 마음을 어른들은 알 수가 없다.그래서 울고 보채는 아기의 마음을 알고 싶은 작가의 욕구가 이 소석 곳곳에 채워진다.그것은 아기의 순수한 감정이기도 하고, 순수한 감각이기도 하다.수많은 것들을 ,눈에 짚이는데로 입으로 넣어서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아기의 의지는 어른의 의지를 넘어설 때가 있다.책에서는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작가의 시선이 돋보인다.미각적인 요소들, 아기들은 어떻게 어른들이 느끼느 다양한 미각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아기도 어른처럼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아기는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지 알고 싶어질 때, 작가의 실험 정신이 느껴지는 이 책 한 권을 읽어보면 괜찮을 것 같다.태명 동동이었던 아이가 동하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존재감을 보여받게 된다.그리고 이름이 불리어지면서, 아기는 스스로 성장의 씨앗을 뿌려 나가게 된다.책에는 바로 이런 부분들로 채워지게 된다.아기의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서 아기의 심성이 아닌 어른의 심섬으로 채워져 있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깊이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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