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the Mind: Volume One, Thinking (Hardcover, 1st)
Harcourt Brace Jovanovich / 1978년 3월
평점 :
품절


그리고 암시된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 윗선의 특징이다. 달리 표현하면, 위선자는 악을 기뻐하고 자신의 즐거움은 자기 주변에 은폐하는 악한이 아니다. 위선자에게 적용되는 시금석은 "네가 보이고 싶은 대로 있어라"라고 밝힌 노년기 소크라테스의 주장이다.(-89-)


의식은 사유와 동일하지 않다. 의식활동은 '지향적'활동이며, 이런 이유로 인지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따라서 의식 활동은 감각 경험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반면에 사유하는 나는 무엇을 사유하지 않고 무엇에 대해 사유한다. 이러한 활동은 문답적이다. 사유는 소리 없는 대화라는 형태로 진행된다. 자기자각이란 의미의 의식이 없었다면 사유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사유가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실현하는 것은 의식 속에 단순한 원재료로 주어진 차이다. 따라서 의식은 이러한 인간화된 형태 속에 단순한 원재료로 주어진 차이다. 따라서 의식은 이러한 인간화된 형태 속에서만 신도 동물도 아닌 인간인 어떤 사람의 두드러진 특징이 된다. 은유가 한편으로는 현상세계,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에서 진행되는 정신 활동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듯이, 소크라테스의 '하나 속의 둘'은 사유의 고독성을 치유한다. 사유의 본질적인 이원성은 지구의 법칙인 무한한 다원성을 시사한다.(-293-)


내가 말하는 세 가지는 존재하는 것, 인식하는 것,의지하는 것입니다. 나는 존재하고 인식하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나는 인식하고 의지하면서 존재합니다. 나는 존재하고 의지하는 것을 인식합니다.그리고 나는 존재하고 인식하는 것을 의지합니다. 이 세가지를 식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생각하게 하소서. 하나의 생명, 하나의 정신, 하나의 본질이 어떻게 분리 불가능한가를...그럼에도 구별은 있습니다. 물론 이 비유는 '존재가 성부이고,인식이 성자이며,의지가 성령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아우구스티누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단지 정신적인 '내'가 분리 불가능하면서도 구별되는 세 가지 완전히 다른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456-)


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 하노버 인근 도시 린덴에서 태어났다.제2차 세계대전을 피하여, 프랑스로, 미국으로 이주하면서,그녀의 정치 철학은 깊이를 더해가게 되었다. 전체주의에 대한 인식과 전환점을 마련하였고,그의 불세출의 저작 <예루살렘과 아이히만>이 있다.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원흉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악행에 대해서 '악의 평범성' 을 규정함으로서 유대인들의 공분을 일으키게 된다. 그 이유는 한나 아렌트가 유태인이면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두둔하는 듯한 철학전인 언사를 내밷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녀의 이런 견해는 시간이 지나 옳았다는 게 검증되었고, 그녀의 정치철학은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었다.


책 <정신의 삶>은 그런 측면에서 한나 아렌트의 유고작이며, 이 책을 온전하게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한나 아렌트의 저서들은 번역과정에서 나타나는 어려운 문제들로 인하여 어려웠으며, 번역 과정에서 매끄럽지 않은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한나 아렌트의 저서 <정신의 삶>은 기존의 번역과 달리 매끄럽고 깔끔함을 드러내고 있다.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한나 아렌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번역의 반역이라 할 정도로 그동안 형편없었던 번역책과는 차별을 두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의 사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고대 그리스의 철학부터 칸트의 대표작 ,3대 비판서까지 아우르고 있다.책 <정신의 삶>은 크게 사유,의지, 판단으로 분류되는데, 이 책은 판단이 빠진 사유와 의지만 언급하고 있다.그건 이 책이 미완성이며, '판단'편이 쓰여지기 전에 한나 아렌트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떳기 때문이다.인간의 사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여, 인간은 사유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정리되고 있다. 사유는 인간의 의지와 연결되고 있으며, 인간이 보여주는 추상적 가치인 의지에 대해서 자연적 자유의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자연적으로 인간이라면 주어지는 자연적 자유의지는 자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다. 또한 의지는 파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때에 따라 공격적인 특징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은 사유에 의해서 생각을 획득하게 되고, 사유는 의지와 연결되면서,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힘에 의한 의지로 표출하려고 한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말할 때, 그 순간 우리는 스스로 '의지'를 발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들이 지나게 되면, 판단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드러내게 되는데,한나 아렌트가 언급하고자 하는 '판단'의 가치는 칸트의 3대 비판서 중 마지막 저서 '판단력 비판'과 결부지어서 설명하면,한나 아렌트가 생각하는 '판단'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상상하게 되고,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사유,의지, 판단을 기점으로 해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구현하려 했으며, 그녀의 인생 그 자체에 녹여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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