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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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에 대하여그 여자를 처음 만난 건 1952년 가을이었습니다.니혼바시의 라면 가게에서 만났어요.내가 대학생일 때였는데, 집에서 용돈은 넉넉히 보내줬지만 그래도 아르바이트라는 걸 해보고 싶었습니다.아직 철모르던 때라서 별 생각 없이 여자만 보면 혹하던 그런 나이였어요.얌전하고 조용하고 얼굴이 하얀 아가씨라서 잠깐 넘어갔던 거라고요. (-49-)



하지만 왜 그렇게 죽었는지 모르겠어요.전혀 짐작도 가질 않습니다.그녀가 몇 년 전에 텔레비전에 출연하면서부터 나한테는 사업적인 상담은 전혀 하지 않더라고요.남들 눈에 띄면 큰일이라면서 옛날처럼 마음 편히 여행도 하지 않았어요.그전에는 마누라 모르게 해외여행도 다녔는데 말이죠. (-136-)


토요일 저녘 , 아들을 따라 조용히 들어오는 그 여자는 한 송이 백합꽃처럼 보이더군요.선한 느낌이라는 게 첫 인상이었어요.아들이 그런 모습에 깜빡 홀렸던 거, 나도 똑같이 속아 넘어갔으니까 나무랄 수도 없어요. 나이도 스무 살 정도로만 보였거든요. 말씨가 어찌나 공손한지, 내가 말을 건네면 조용조용 대답하더라고요. 부모님이 안 계신데 어쩜 이리도 착하게 자랐을까.내심 놀랐을 정도에요..(-173-)


화류계에서 아무리 티격태격 부대끼며 살았어도 그렇게 악랄한짓을 하는 여자는 본 적이 없어. 내 비취와 사파이어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어떻게든 다시 찾아볼 생각으로 그 보석점에도 가봤어.그랬더니 보석 감정사라는 남자가 마치 주인처럼 나와서 그러더라고.(-269-)


누가 그렇게 소리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아무튼 저는 조심조심 그녀를 무리 없는 자세로 눕혀줬습니다.7층에서 떨어졌으니 출혈이 심했을 텐데도 빨간 드레스였기 때문에 그게 잘 보이지 않았죠.인형처럼 아름다운 죽음이었어요. (-381-)


어머니 쪽에서 형제간을 차별 대우하는 건 없었어요. 단지 형은 공부를 잘 하고 나는 공부라면 질색이었으니까 형제라고 해도 성격은 완전히 달랐잖아요. 그래서 형에게는 형에 맞게, 나한테는 나한테 맞게 어머니가 늘 말하던 '사랑'으로 감싸준 거예요.나도 엄청 혜택을 받으면서 살았죠. 네.(-451-)


그녀가 7층에서 뛰어내렸다. 그녀의 이름은 도미노코시 기미코였거, 스즈키 기미코였다.그리고 책에서 말하는 악녀였다.하지만 스즈키는 악녀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얀 얼굴에 조용조용히 지내는 그녀에게 기품이 있었고, 자신만의 색깔이 있었다. 사업을 하고, 유명인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런 그녀만의 독특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자신이 악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도미노코시 기미코는 분명 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악녀였다.


책에는 그녀와 엮인 27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각자 그녀를 보는 시선은 상당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30년전 중학교 때부터 봐왔던 이들부터 , 그녀가 낳은 두 아들까지, 사회에서 만난 사람,그녀와 함게 지냈던 이들이나 연인관계였던 사람들, 그들에게서는 그녀에게 보는 시선은 각기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었다.그녀가 악녀였다고 고발하는 신문 기사를 보면서, 어떤 이들은 그녀가 악녀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었다. 도미노코시 기미코는 사람을 이용할 줄 알았다. 귀금속에 관심이 많았고, 돈을 모를 줄 아는 여자였다. 남자들과 염문을 뿌리면서, 때로는 자신을 숨기면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바꿔 말하면 꽃뱀이었고, 때로는 아수라였다. 사람에 따라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그런 카멜레온 같은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거짓말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고, 결정적인 순간에 눈물을 흘려서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았다. 진실이 진실이 아니듯, 거짓이 거짓이 아니듯, 그녀의 존재로 인해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되어야 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는 지금 현재,도미노코시 기미코와 같은 비슷한 사람을 알고 있다.물론 나는 그 사람을 멀리하고 경계하고 있다. 독특하면서, 매혹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는 소설 한편을 읽게 된다.우리 사회가 규정하는 악녀란 어떤 존재인가 곰곰히 따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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