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지옥
마츠바라 준코 지음, 신찬 옮김 / 동아엠앤비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맞아.나도 오래 살고 싶은 생각 없어.우리 어머니를 아흔여섯까지 간병했는데 험한 모습 보이면서까지 오래 사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어.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그래서 난 그렇게 되기 전에 죽고 싶어."((-21-)


일본인은 예전부터 죽음을 두려워하며 터부시해왔고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꺼려하며 애써 외면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자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그래서 부모가 위독하면 '살려주세요'라고 의사에게 애원한다. (-51-)


돈이 흘러넘쳐도 세월은 피할 수 없다.죽을 때까지 남들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지만 세월은 끊임없이 몸을 좀먹는다.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은 이런 생각들이 머리에 가득하다. 젊었을 때는 몰랐던 세월의 엄혹함을 실감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107-)



혼자사는 사람은 독신답게 안주할 곳을 바라지 말고 '혼자인 삶'을 각오해야 한다는 미학을 가진 나는 어떻게 될까? 건강한 채 홀연히 죽으면 좋겠지만 뇌경색이나 치매가 생기면 미학을 따지고 있을 여유가 없다. 다리가 불편해서 화장실에 혼자 갈 수 없는 지경이 돼도 혼자 집에서 버티겠는가? 노화는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조우다. (-145-)


가끔 산다는 게 죽는 것보다 버겁고 힘들 때가 있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모습들이 내 삶을 번번히 흔들어 놓는다.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덩달아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10대 학창 시절에는 어른이 되길 손꼽아 기다렸지만, 정작 어른이 되니 생각보다 설레이거나 기대감이 낮아지게 된다. 차라리 어릴 적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게 더 낫다는 걸 절감하게 되며, 살아가는데 있어서 회의감이 밀려온다.죽음을 목도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인식하게 되는 그 순간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살아가는 이유와 죽음에 대해서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199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수명이 5년정도 늘어았다. 그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현실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제도는 거기에 맞춰 가지 못하고 있다. 정년 퇴직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1990년대와 달리 21세기 지금은 정년 연장은 감지덕지이고, 평생 돈을 벌어나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죽을 때까지 배움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우리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며, 불안을 감추고자 하는 나 자신의 몸부림도 공존한다. 이 책은 바로 장수가 가져 오는 문제들을 짚어 나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안락사와 존엄사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다. 결론이 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현주소를 비춰 볼 때, 장수지옥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연명치료를 하면서 병원에 살아가야 하고,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병원비로 들어가는 지출은 과거에 비해 늘어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삶에 대해서 걱정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이다. 의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좁았고, 포기하는 게 생각보다 쉬워졌다. 하지만 의학기술이 발달하고, 수명 연장이 되면서, 우리의 선택권은 늘어나게 된다. 삶에 대해서 포기 하지 못하는 현주소를 비춰 본다면, 사회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 수 있다.


이젠 연명치료는 중단해야 한다고 보여진다. 그것이 웰다잉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죽음 직전에 미리 나의 의지를 유가족에게 남겨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며, 더 나아가 안락사와 존엄사까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물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사회적인 문제들, 의사에 의한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안락사가 시행되지 않도록 사회적인 배려가 필요하며, 장수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우리 스스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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