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 식탁에 커피향 흐르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윤동주를 사랑한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윤수현 옮김 / 스타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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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김수성 정도는

파삭파삭 말라가는 마음을
남 탓하지 마라
스스로 물주기를 게을리해놓고

서먹해진 사이를
친구탓하지 마라
유연한 마음을 잃은 것은 누구인가

짜증 나는 것을
가족 탓하지 마라
모두 내 잘못

초심을 잃어가는 것을
세월 탓하지 마라.
애초부터 미약한 뜻에 지나지 않았다.

안 좋은 것 전부를
시대 탓하지 마라
희미하게 빛나는 존엄의 포기.(-19-)


질문

인류는
이제 손쓸 수 없이 늙었나요
아니면
아직 매우 젊은가요
누구도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은
질문
모든 것에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우리는 
지금 대체 어디쯤?

삽삽한
초여름의 바람이여 (-49-)


되새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닳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소녀시절
아름다운 태도
정확한 발음의
멋진 여성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애쓰는 걸 간파한 듯
무심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풋풋함이 중요해요.
사람에 대해서든 세상에 대해서든
사람을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게 되었을 때
타락하기 시작하죠 떨어지는 걸
감추려 해도 감추지 못한 사람을 여러 명 보았어요.

나는 뜨끔했습니다
그리고 깊이 깨달았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갈팡질팡해도 되는구나
어색한 인사 추하게 빨개진다
실어증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
아이의 나쁜 행동에도 상처를 받는다.
믿음이 안 가는 생굴과 같은 감수성
그것을 단련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던 거구나
나이 들어도 갓 핀 장미 연약하고
밖을 향해 피는 것이야말로 어렵다.
모든 일
모든 좋은 일의 핵심에는
떨리는 약한 안테나가 감춰져 있다 분명
나도 예전 그 사람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되돌아보며 
지금도 가끔 그 의미를
조용히 되새길 때가 있습니다.(-91-)


회상이라는 것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나는 나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시간의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그르다는 걸 인식하게 되는 그 순간,나 스스로 부끄러움과 마주하게 된다. 이제 고인이 되어버린 시인 윤동주의 삶의 파라미터 안에서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또다른 부끄러운 자화상과 마주하게 된다. 시는 우리의 마음 언저리의 본질적인 요소들에 개입하게 되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것들, 내 앞에 놓여진 것들에 대해서 조금씩 소중하게 생각하고 어여쁘게 바라보게 되며, 그것을 또다른 시들을 통해서 내 삶을 반추하게 되었다. 윤동주를 사랑했던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씨는 윤동주의 시에서 자신의 시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었고, 그 동시대에 살아왔다는 걸 잊지 않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것이리라, 윤동주의 시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들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된다. 또한 시들은 스스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어릴 때의 나의 모습과 성장하면서 자신의 모습들을 겹쳐 놓으면서, 내가 남겨놓을 씨앗에 대해서 스스로 발아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자신의 풋풋한 어린 시절을 잊지 않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암울했던 시기에도 그 안에는 아름다움이 공존하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함이 숨쉬고 있었다.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 추하지 않도록 살아가며, 그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시들이 한 권의 책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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