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 역사 인물 소설
김하늘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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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눈을 피하기 위해,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상해 곳곳 열두 군데에 폭탄 제조 시설을 만들었다. 한 곳이 발각되더라도 피해를 분산시켜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조치다. 폭탄 제조에 필요한 재료를 파는 곳은 일본 조계 안에 있는 '삼정양행'이다. 물론 일본인이 주인이다. 조선 사람이라면 천금을 싸 들고가도 심지 하나도 살 수가 없다.할 수 없이 중국 혁명당 동지를 동원했다. (-133-)


1896년 독립협회가, 1907년 13도 창의군이, 1919년 임시정부도 줄기차게 시도한 단일대오가 드디어 신간회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신간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자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가슴이 뛰었다. (-201-)


1942년 5월, 드디어 조선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가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으로 합쳐졌다. 이렇게 되자 임시정부는 한국독립당 1당 체제에서 여당인 한국독립당과 야당인 조선민족혁명당으로 양당체제가 되었다. 두 당을 한독당과 민혁당이라는 약칭으로 불렀다. (-291-)


한국의 근현대사는 반쪽짜리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 중에 북한에 월북하거나 북한 출신 독립운동가는 역사의 기록에서 배제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역사를 온전하게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단적인 예이며, 친일 세력이 남한에 뿌리 내리고, 북한이 친일 척결을 완료지었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약산 김원봉 선생의 일대기를 보면, 그가 일제시대에 의열단을 꾸려 일본의 만행에 맞서 싸웠지만, 남한의 고문기술자의 고문 때문에 월북한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그의 독립운동은 지워지고 말았다.


이 책을 읽기전 약산 김원봉 선생의 영화는 접해 보지 못했다.그래서 이 소설에 대한 낯설음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백범 김구 선생과 우당 이승만 전 대통령이 주도한 상해임시정부는 기억하고 있지만 약산 김원봉 선생의 의열단의 실체는 잘 알려지지 못하였다. 그럼으로서 우리는 일제에 항거했던 안창호 의사, 윤봉주 열사의 전 생애를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전쟁의 중심지였던 한반도를 피해서 밀양 출신 김원봉 윤세주, 김상윤이 주도해서 만든 의열단은 중국의 황포군관학교를 모티브로 하여, 한국혁명청년회를 조직하여서, 우리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게 된다.


약산 김원봉의 일생은 조선의 독립과 연결된. 자신의 전재산을 털러 의열단을 조직하였고, 의열단원들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암울한 현실과 마주하였던 약산 김원봉. 열두살 어린 박차정과 결혼하였지만, 박차정은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 스무살 터울이 지는 최동선과 재결혼하게 된다.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부족한 것들을 채워 나가기 시작하였고, 점조작 형태의 의열단이 구축되었다. 그건 의열당 내부의 사람들이 밀정이 되거나 한사람이 죽더라도 조직은 살아있어야 한다는 그 목적에 따라 움직이게 된 것이다. 한반도가 광복을 맞이하였지만 약산 김원봉은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였다. 일제가 물러나고,그 자리를 자신을 월북하게 만든 고문기술자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북한으로 월북하여 약산 김원봉의 일대기는 크게 부각되지 못하였고, 광복 70년이 지난 현재에 북한과의 관계가 해소되면서 약산 김원봉의 삶과 업적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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