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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심리적 공간'은 물리적 공간'이 확보되어야 가능해진다. 서구의 근대 부르주아 출현 이후에 생긴 가장 큰 주거상의 변화는 '남자의 방'의 출현이다. 취향과 관심이 공간으로 구체화되었기 때문이다. 내 실존은 '공간'으로 확인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에게도 남자들처럼 '자기만의 방'이 있다면 얼마든지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 (-11-)
'좋은 것'을 추상적으로 정의하고, 각론의 부재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나쁜 것','불편한 것'을 제거하자는 생각은 독일의 오래된 실용주의 전통이다. 1920년대 '바우하우스'에서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FFF' 디자인 원칙이 강조되었다. 삶을 불편하게 하는 불필요한 장식을 죄다 제거하자는 이야기다. (-114-)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 날 것의 '감정 폭력'이 흥미로운 것이다. 전혀 낯선 형태의 '감정 혁명'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소셜 미디어의 규칙 없는 감정 과잉과 감정 폭력이 지속되면 어떤 형태로든 '감정의 문명화 과정'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감정의 근대적 자기 강제가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되었담녀, 가상공간과 현ㅇ실공간이 융합되는 21세기의 '감정혁명'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대단한 나라'에 살고 있다.(-161-)
물론 '자유'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종류의 '자유'인가? 우선, 마음껏 '불 피울 수 있는 자유'다. '불피우기'는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인류 역사에서 모든 '의미'는 '불피우기'와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종교적 리츄얼에 '불 피우기'가 빠지지 않는 거다. 한국 사내들의 느닷없는 캠핑 열풍도 이 '불 피우기'때무이다.'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다. 삶의 의미가 찾아지지 않으니 자꾸 이상한 '불장난'만 하는 거다.(-210-)
한번 비관적 생각에 빠지면 모든 것을 꼬아 생각하는 내 오래된 습관이 되살아났다. 인생 사는 데 비관주의가 아무 도움 안 된다는 것은 수년 전 교수를 그만 둘 때 이미 알았다. 사태의 비관적 전망을 예고하는 것은 '지식인'의 의무다. 이런 비관주의는 '지적 우월함'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나름 지식인'을 아침에 만나면 하루 종일 뭔가 불편한 거다. (-235-)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지극히 독일적인 특색을 갖추고 있으며, 유럽적이면서, 한국적인 면을 동시에 추구한다.그는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으며, 항상 일탈을 꿈꾸고 있다. 자칭 한국 남자로서 역마살이 끼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자신의 권위나 지식인으로서 책무를 내려놓고 싶은 그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한편 그는 권위를 내려놓고 싶지 않으면서, 또다른 권위에 대해서 도전하고 까발리고 있다. 지식인으로서 김정운 교수는 교수로서의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책무를 내려놓고 여수 밤바다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정착하게 된다. 그는 자유를 추구하면서 후회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서, 자신만의 공간을 창조의 기착지로 삼아 나가게 되었으며, 그것이 스스로 비관주의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또다른 숨구멍의 민낯이었다. 그의 이러한 아웃사이더 식의 행위나 전위적인 모습들은 일반적인 한국인이 가지지 못한 독특한 개성의 실체이며, 그는 교수로서 권위를 내려놓고 싶지 않으면서, 자유를 얻고 싶은 독특한 양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한편 모순 덩어리다. 남자로서 자신의 열등감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갔고, 치열하게 고민한다. 문제는 그는 자신을 너무 잘 안다는데 있다. 여느 남자들이 자신의 열등감을 마주하지 못하고, 이리 뒹굴,저리 뒹굴 거리면서 진흙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반해,그의 치열한 사회에 대한 탐구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있는 분노의 감정의 원인은 어디서 기인하게 되었는지 찾아나가고 있으며, 스스로 '미역 창고'에 갖처 지식인으로서 창조적인 일을 하고 있다. 또한 그가 언급하고 있는 사회 심리학은 한국사회의 문제들의 근원과 본질들을 진단하고 있으며, 스스로 풀지 못하는 숙제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섬과 바다라는 틀안에 자신을 가두면서, 뭍으로 들어갈려 하는 김정운 교수의 모순된 행위는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향하고 있으며, 한국인들의 보편적인 심리의 실체들을 마주하게 된다.또한 김정운 교수는 스스로를 가둠으로서 극한의 창조적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대한민국 사회와 자신을 네트워크화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