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 : 단색화에 담긴 삶과 예술
케이트 림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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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린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저항인 것 같다. 우리는 작품에서 어떤 의상을 걸치고 나왔냐에 관심을 갖는게 아니라 작가가 어떤 모냥으로 살고 있는가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나타나는 결과보다는 그런 결과를 초래케 한 도정을 살피는 것이다.(-52-)


나는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한 보다 적극적인 전달을 조형상에 기도하고 있다. 죽음과 생존, 이 극한과 극한의 대치, 이 양극 사이의 긴장 상태, 이것이 내 조형행위의 저변이다. (-149-)


박서보가 언급하는 '꿈'이란 '원형질'을 넘어서는 어떤 다른 새로운 작업을 의미하는 것일까.전쟁터의 사생의 간극에서 그 무섭고 긴장된 순간에도 찰나의 꿈을 꾸는 것이 인간의 예술 생리라고 박서보는 설명한다.(-149-)


나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탈 이미지,탈논리, 탈표현 등을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던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하고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신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말입니다. 이제 나에게 있어서 그림은 수신의 결정체일 수도 있습니다.(-244-)


단색화론을 쓴다는 것은 결국 한국 현대미술사를 쓰는 작업이지, 서구미술사를 인용하고 서구 미술론을 한국 미술에 단순 접목시키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얼마나 많은 단색화 평론이 미니멀리즘과 서구 모노크롬을 들먹이며 결론도 핵심도 없는 혼란된 무시각적 비교를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50-)


나는 박서보라는 화가를 잘 모른다. 미술에 문외한이었고, 예술적 감각도 뛰어나지 않다. 관심이 없다 보니 알지 못했던 건 당연한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을 펼쳐 보면 예천 출신 박서보의 이름 '박서보' 은 화가로서, 예술가로서 자신의 의지의 표상이며,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드러내는 하나의 매개체이자 또다른 이름이다. 그의 봄명 박재홍과 '박서보'는 별개이면서, 융합되었다. 1931년에 태어나 전쟁을 몸으로 겪은 세대로서 저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통감하게 된다. 홍익대학교입학 후 바로 전쟁이 터지면서, 예술가로서의 일을 멈추게 되었다. 전쟁은 저자의 예솔혼의 근원이면서, 삶의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예술로서 저항을 그렸고, 예술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가 예술 속에 채워진 단색화는 긴장의 연속 안에서 미술적인 감각과 팽팽함을 투영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일종의 행위에 대해서, 한국 사회는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1960년대 초반 대한민국 사회에 5.16 이 일어난 해에 제 2회 파리 국제 비엔날레에 참가할 당시만 하여도 한국은 동아시아 변방의 작은 나라였으며, 한국미술의 가치는 검증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박서보는 그것을 예술적 표현의 산실로 바꿔 나가게 되었다. '한국식 앙포르멜'을 예술적 가치 속에 녹여내었고, 서구사회가 추구하였던 미술적 사조를 한국식으로 바꿔 놓았다. 미술 평론가들이 자신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 깎아 내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던 박서보는 한지와 단색을 절묘하게 섞어서 미술과 조형을 교차시켜 놓았다. 그의 예술혼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게 된다. 1950년대 혼란스러웠던 그 시대의 예술과, 박정희 유신 독재때 박서보가 구현했던 예술은 분명 차이가 난다. 그는 그것을 허용하였고, 미술 평론가들은 점차 박서보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단색화와 동양적 가치를 묶으면서, 서양이 추구하는 미술 사조가 아닌 한국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미술 사조를 구현했으며, 그의 예술은 86아시안 게임, 88서울 올림픽, 두번의 올림픽에서 검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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