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사심은 없다 - 이나모리 가즈오
기타 야스토시 지음, 양준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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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는 진보계열 정당을 응원하는 사람이다.노동조합 운동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체제에 안주하거나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사람에 비판적이다. 기업 경영에 대해서도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법을 자주 취한다. 하지만 동시에 사상에 의해 행도이 얽매이는 것도 없었다. 이때도 그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에 따라 행동하려고 했다. (-115-)


1965년 1월부터 도입된 것이 '시간당 채산 제도'였다. 계산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생산액에서 경비를 제하고 이를 총 노동시간으로 나눈다. 이 시간당 부가가치를 지표로 해 가능해진 것이 '아메바 경영'이었다. 회사를 공정별 또는 제품군별로 몇 개의 작은 조직으로 나누고, 각 조직이 하나의 중소기업인 것처럼 시간당 채산 제도에 따라 독립 채산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187-)


이윽고 이나모리 가즈오의 생각은 '교세라 회계학'이라 불리게 된다. 뛰어난 경영자는 자신의 경영학을 창시하는 것이다. 이나모리 역시 그러했다. 그는 기술적으로는 최첨단을 추구하면서도, 회계 처리 및 재무 측면에선 철저하게 보수적으로 견실하게 꾸려가고자 했다. 우선 회계 처리에 대해서는 현금의 움직임과 전표를 일대일 대응으로 처리하는 것에 집착했다. 결코 주먹구구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06-)


1960년 7월 4일 장녀 시노부가, 1962년 9월 17일에는 차녀 치하루가, 1964년 10월 29일에는 삼녀 미즈호가 탄생했지만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충분한 것을 해줄수가 없었다. 이나모리는 세 딸에게 이렇게 사과의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빠다운 일을 하나도 해 준 일 없는, 정말 나쁜 아빠였어. 하지만 아빠에게는 수백 명의 자식이 있단다. 이해해주렴."(-233-)


야마시나의 교세라 본사에서 손정의 일행과 처음 만난 것은 1986년의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이나모리는 대학을 나온 지 얼마 안 된 이 젊은 기업가에 관심을 가졌다. 24살의 손정의와 25살 차이라서 부모와 자식 정도의 나이 차이였지만 , 그의 날카로움과 행동력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들어보니 아직 제2전전 외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제2전전과 우선 협상하고 잘되면 그 실적을 타사에 pr 할 수 있었다. 실패해도, 문제점을 수정하고 다른 업체와의 협상에 임하면 좋을 것이다. 손정의가 생각하는 것이 뻔히 눈에 보였다. (-296-)


이나모리 가즈오는 당초 분할된 ntt의 장거리 통신 부문과 경쟁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후에도 ntt 분할은 지지부진했다. 그래서 그는 여론에 호소하는 작전에 나선다. (-313-)


jal의 회생은직원의 '가치관'과 '일하는 방식'을 바꾼 것으로 실현햇다. 일본의 재생 또한 일본의 '가치관'과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정부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은 하토야마 총리가 국내외의 신뢰를 잃고 미틀거리기를 계속했고, 간 총리는 동일본 대지진에서 위기관리 능력이 없음을 드러냈다. 미숙함과 포퓰리즘에 의존한 정책으로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419-)


자국 밖에 생각하지 않는 국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개인이 늘고 있는 요즘이기 때문에 이나모리의 '이타주의 철학'은 더욱 빛을 더해가고 있다. 사람들이 이기심을 억제하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주위를 배려하고, 사회를 생각하고, 국가를 생각하고 인류의 안녕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다.(-431-)


이 책은 이나모리 가즈오 평전이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 이라 부르는 이나모리 가즈오는 여느 경영인과 달리 수십권의 책을 써냈으며, 자신의 경영기법을 일본 사회에 널리 퍼트리게 된다. 특히 이십대 후반 1958년되는 해에 기존에 일했던 쇼후 공업을 퇴사하였으며, 새로운 기업을 창업하게 되었다. 그의 기업 CEO로서 첫 발걸음을 뗀지 6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왔으며, 그의 아메바 겨영 방식은 일본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책은 왜 이나모리 아즈오에게 '경영의 신' 이라 부르는지 ,이나무리 가즈오의 경영방식에 대한 이해, 그의 삶의 궤적을 보면서,그의 경영 전략과 그가 구하는 기업 철학이나 신념에 대해서 고찰해 나가고 있다. 세라믹 전문 중소기업 교세라를 설립하고, 매년 10퍼센트 이상의 고속성장을 하게 되는데, 이나모리 가즈오가 운영하는 기업의 세라믹 제품은 ibm 에 직접 납품할 정도로 남다른 기술력과 신뢰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처럼 그의 경영의 근저에는 신뢰와 믿음이 있었으며, 정교한 기술력을 기반삼아서, 기업인으로 성공모델에 근접하게 된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정치성향은 사회주의에 가깝다. 한국의 기업인들이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에 근접한다는 걸 비추어 보면, 그는 이례적인 횡보를 보여주고 있다. 경영에 있어서 정도를 걸어가면서, 불합리한 상황에 타협하지 않았다. 반면 그는 기업인으로서 성공했지만, 그는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는 자격미달에 가까웠다. 그래서 세 남매에게 항상 미안함을 품고 있었으며, 내 아이가 성장해 좋은 부모가 된 것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기업 경영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품으로 보면, 스스로 부족한 부분은 인정하고 내려놓을 것은 스스로 내려놓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기업 경영 뿐 아니라 기업 회복이나 기업회생에도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적자에 허덕이는 jal 기업을 정상화하였으며, v자 회복을 현실화하게 된다.


이 책에서 손정의와 이나모리 가즈오의 일화가 소개된다. 지금 소프트뱅크의 수장인 손정의는 대학 졸업할 당시에 이나모리 가즈오 앞에서 당돌하였고, 당당하였다. 그래서 손정의는 기업인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었지만, 이나모리 가즈오는 그의 당돌함을 높게 봤으며, 그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손정의의 완패였다. 손정의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모든 경영 노하우를 배우겠다고 결심하였으며, 이나모리 가즈오와 독자 노선으로 남다른 경영방식을 추구하였으며, 일본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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