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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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면서 나는 주로 뭘 했을까. 고임 씨는 생각해 본다면 나물 뜯고 씨를 뿌리고 모종을 했다. 여름이면 트랙터가 벼 베는 묵은 삼베를 꺼내 적삼을 짓기도 했다. 가을이면 트랙터가 벼 베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겨울이면 이녁과 윤후가 남겨놓은 소설책을 읽기도 한다. 이녁이 면소에 근무할 때 할부 책장수들이 떠넘기고 갔던 전집들과 윤후가 남긴 책이 오백권도 넘었다. (-103-)


인덕은 장희와 동창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장희는 서울에 있는 은행에 입사했고 인덕은 광주 소재 간호전문대에 입학했다. 서울로 간 장희가 집에 다니러 오는 일이 워낙 드물어 얼굴 볼 기회가 없었다. 학교를 졸업한 인덕이 갓 취직했을 때 장희는 은행원으로서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자취방도 제법 넓었다. 장희가 인덕에게 함께 살자고 했다. 일년쯤 함께 지냈다. (-197-)


"내가 매구 할매와 지내면서 오지랖이 넓어져 ,괜한 생각을 한 건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늦가을 윤후네 감나무 가지 치던 날, 네 어머니가 저녁참에 매구 할매한테 오셨거든. 그때 네 어머니가 좀 이상하셨어."(-213-)


매구할매는 매구 할매인 녹두가 서방과 아들들을 잡아먹었다고 시집에 쫒겨난 뒤 죽으려고 물에 빠졌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었다. 매구 할매가 사는 동네에서 56년을 살고 있는 병선씨가 모르는 이야기였다. 매구 할매가 스물여덟 살 때라는 시작 대목에서 녹두는 '세상의 끝에 다다랐다"고 했다. '억지로 죽지 못했으니 저절로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할 '거라고 했다.'세상 끝에서.'(-232-)


매구 할매는 젊은 날부터 마을 안의 출생과 죽음을 예시했다. 무당으로 나서는 대신 산파노릇을 했지만 신기는 내렸을 것이라 했다. 그래서 천 년 묵은 여우, 매구 귀신 같다고 매구 할매라 불렀다. 장희의 둘째 임신을 예시한 이후 매구 할매는 더 이상 출생을 예시하지 않았다. (-282-)


전라남도 담영에는 해마다 추석 정월대보름에 '죽산 매구굿' 이 열린다. 풍물놀이의 일종으로 일년동안 마을 동네에 잡귀를 뿌리치고, 복을 불러 들이는 일종의 마을 전통 무형문화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소설 속 매구 할매와 책 제목에 있는 대꽃이 서로 엵혀 있는 이유는 이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백년의 시간이 니자 대나무에 꽃이 피면 대나무가 죽는다는 것은 대나무를 좋아하고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알고 있는 대나무의 순리이다.인간도 대나무와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100년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의 일생 속에서 꽃이 피는 시점은 언제였을까, 소설은 바로 그 대나무의 생리를 소설 속 주인공 매구할매를 통해서 식물의 삶과 인간의 삶을 엮어간다.


소설은 매구할매, 매구 귀신에 대한 배경 지식 없어도 쉽게 읽혀진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부모님과 조부모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유교사상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한국의 정서에서 여자의 삶은 무시가 일상적이었고, 비참하고, 절망스런 나날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농사가 마을의 주된 삶의 수단이었으며, 그 마을에서 보편적인 삶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배척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우리의 농촌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의료기술과 의학기술이 부족했던 시대에 의사를 대신했던 무당 매구할매의 삶을 고찰해 볼 수 있다. 이 소설이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우리의 삶도 바뀌고 있다. 전통에 대한 보존과 파괴가 현실이 된 가운데, 마을의 터줏대감 매구할매의 이야기를 쓴 증손녀 유은현은 불쌍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었다 남편이 죽으면, 마을에서 남편 잃은 불쌍한 여인에게 남자를 잡아먹었다 하여 며느리를 내치려는 정서가 그 시대에 있었다. 그래서 매구할매의 이야기에 오십이 넘은 삶을 살아가는 병선 씨가 눈물을 흘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글을 배우지 못하였고, 자신을 내세우지 못하였고, 시대적인 아픔을 참으면서 감내해야 했던 그 시대의 여성의 삶은 불쌍함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 소설은 매구 할매의 이야기와 함께 여순반란 사건과 엮이면서 , 한마을에 있었던 불행과 마주하게 된다. 매구할매 진녹두와 병선씨의 이야기, 우리의 삶이란 불행과 행운이 겹쳐지면서, 서로의 삶에 연민을 느끼면서, 함께 살아간다. 우리의 아픈 역사와 한사람의 삶이 서로 교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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