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의 재구성 -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판사는 비판에 익숙지 않은 존재다. 판결은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기치 아래 존중의 대상으로 되어 있다. 어떤 판결이 내려지면 정당성을 따지기 보다는 그 결론을 인정하고 다음 단계를 강구하는 게 시회의 반응이다. 간혹 비판 물결이 일더라도 정서적이고 즉물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니, 판사들은 무시하게 된다. 신문기사 몇 줄을 보고서 내린 판단의 무게가 같을 수 없다. 그런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74-)


그런데 수상한 정황들이 발견됐다.이대우가 자신의 병원 직원 명의로 다량의 수면제를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고, 아내가 죽던 날에는 병원에서 약물을 희석해 주사기에 넣어두는 장면이 CCTV 에 포착된 것이다. 경찰 수사망이 압박해오던 어느날 아침, 이대우는 병원에서 자신의 팔에 주사를 놓은 후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140-)


판사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중립 집착'이라는 물이 든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원고의 소장을 읽어보면 피고는 천하의 악당인데, 피고의 답변서를 받아보면 원고야말로 사악하다.원고의 준비서면을 보면 피고는 거짓말 황제다. 이런 식이니, 한쪽 말만 듣고 판단을 내리는 일을 극도로 기피하게 된다. 그런데 나를 만나 호소하려는 그 '한쪽' 은 친구일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다. 이런 때에 법정에서나 읊던 중립을 내세우면 인기가 없어질 수 밖에 없다. (-164-)


감정이 개입된 법률문제가 또 있다. 이혼에 관한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의 대립이다. 유책주의는 잘못이 있는 쪽의 이혼청구를 받아주어서는 안 된다는 거고, 파탄주의는 잘못이 누구한테 있든 혼인이 깨졌으면 이혼하게 해주자는 입장이다. 가족이라는 집단보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하는 요즘에는 파탄주의 쪽이 친근할 수 있다. 반면, 잘못한 쪽이 이혼소장을 내고 뻔뻔하게 구는 사건을 보면 기분이 그렇지 못하다. 안 된다는 쪽의 분노는 대단히 강렬하다.(-222-)


무죄로 하는 건 비교적 마음이 편하다.억울한 사람을 처벌하는 위험은 어쨋든 없으니까. 하지만 무죄의 가능성을 끈질기게 제기당하면서 유죄로 선언하는 일은 상당히 불편하다. 무고한 사람을 집어넣는 위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법률가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일이다.(-279-)


요즘 법원과 판사, 검사, 변호사가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그들은 대중들의 관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신뢰와 의심 사이에서 줄타기 하고 있는 형국이다. 영장 판사의 결정 하나 하나에 대중들이 예민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금처럼 재판 판사가 소설을 쓰고, 그들이 법과 재판에 대해 언급하면서, 대중들의 인기를 얻어가는 것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언제나 법은 어렵고 나와 무관한 것처럼 살아왔으며, 법은 우리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하지만 법의 효용성이 사라지고, 헌법을 유린하는 일이 현실이 되면서, 대중들은 법에 대해서, 헌법에 대해 관심 가지게 되었고, 판사와 검사, 변호사의 직업적 윤리에 대해서 감시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견제한다. 이 책은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법은 어떻게 우리와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으며, 법과 재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판사는 법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따져보게 된다. 특히 법은 엄격한 잣대로 보고 있는 우리의 마음 정서와 다르게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재판 과정에서 나오곤 한다.


바로 그런 것이다. 저자 도진기는 재판에서 무죄로 하면 편하다고 말한다.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판사도 거기서 자유롭다. 그러나 법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명명하고 있다. 법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여러 재판과정에서 우리는 그 재판의 오류들을 목도해 왔다. 박준영 변호사의 재심이 우리에게 주목받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고한 죄명을 통해 억울한 죗값을 치뤄야 했던 사회의 약한 사람들이 법을 도구로 삼는 이들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형사 사건에서는 합리적 의심이 선행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요류들을 미연에 차단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사건에 대해서 뉴스와 여론을 통해서 무죄와 유죄르 판단하는 대중들의 정서와 법관의 정서가 다른 현실이다. 여기서 보자면, 판사는 언제나 사건 안에 감춰진 진실을 꺼낼 수 있어야 하며, 그동안 보았던 수많은 정황들의 모순점을 사실과 거짓의 연결 속에서 찾아 나가야 한다. 진실과 거짓을 판가름 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수사, 정확한 수사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과학적인 방법과 법철학을 활용한 재판과정이 시행된다. 이렇게 법은 언제나 대중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은 그동안 익히 들어본 사건들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는 법적인 문제들 하나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법관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는 법에 대해서, 법관과 판결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