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1 - 7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7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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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필리피 회전의 승자들은 옥타비아누스가 아니라 안토니우스의 입맛에 맞게 속주를 배분했다. 옥타비아누스는 제일 인기 없는 지역을 맡게 됐다. 로마, 이탈리아, 세 개의 거대한 섬 시칠리아, 사르디니아, 코르시카였다. 이 섬에서는 오래전 자급자족 능력을 상실한 이탈리아 주민들에게 먹일 밀이 자랐다. 이는 안토니우스의 성격과도 맞아떨어지는 전략이었다. 로마이과 이탈리아인의 눈에는 옥타비아누스의 얼굴밖에 안 보일 터였고, 안토니우스가 해외에서 보여줄 영웅적 활약상은 로마와 이탈리아로 끊임없이 전달될 터였다. (-12-)


클레오파트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겹의 얇은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는데, 가장 아래쪽은 짙은 갈색이고 위로 갈수록 점점 밝아지다가 가장 윗부분은 옅은 밀짚색이었다. (-80-)


난 사실을 말하는 거요. 잘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해할 수 있을거요. 클레오파트라. 카이사르가 자기 아들과 결혼할 딸을 당신에게 임신시켰을 것 같소? 그는 철저하게 로마인이었고 로마인들은 근친상간을 용납하지 않소. 남매나 오누이 간의 혼인은 말할 것 없고 조카와 삼촌, 조카와 고모 간의 혼인조차 허용하지 않소.사촌끼리의 결혼도 위험하다고 본담 말이오(-114-)


나는 옥타비아누스에게 서방 전체 -먼 히스파니아,가까운 히스파니아,먼 갈리아의 모든 지역, 이탈리아 갈리아, 일리리쿰-를 넘겨줌으로서 그가 더 나은 수입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네. 드리누스 강이 마케도니아와 일리리쿰을 나누는 자연경계이니 동방과 서방의 경계로 삼으면 되겠지(-234-)


네로가 이혼장을 내밀었다."종교적 이유로 당장 당신과 이혼하겠소. 리비아 드루실라.15인 신관단이 시빌라 예언서에 새로 추가된 시구를 해석한 뒤, 그중 하나가 우리의 결혼과 관련 있으며 우리가 즉각 이혼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소.그러니 즉시 짐을 싸서 베스타 신녀 관저로 가시오."
리비아 드루실라는 놀라서 할말을 잃었다.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머릿속이 멍했다. 하지만 그녀는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서 잇었다. 충격으로 인해 겉으로 나타난 변화라고는 별안간 창백해진 얼굴색이 전부였다. (-326-)


결혼식날 리비아 드루실라는 드디어 수석 신녀 아풀레이아를 만났다. 보기만 해도 경외심이 이는 이 여인의 나이는 채 스물다섯 살이 되지 않았다. 베스타 신녀단에서는 예사로운 일이었다. 신녀들 몇 명이 한꺼번에 은퇴 연령인 서른 다섯 살에 도달해 젊은 신녀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는 일이 흔했으니까. (-333-)


카이사르는 동방원정 계획을 수립한 뒤 사흘 뒤 암살되었다. 카이사르의 정적들은 카이사르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다.카이사르의 죽음 뒤에는 브루투스가 있었다. 카이사르가 죽은 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두려움을 느꼈고, 몸을 사리게 된다. 카이사르가 남겨놓은 씨앗 어린 파라오 카이사리온은 아직 어렸으며, 권력을 쥐기에는 요원했다. 카이사르가 죽음으로서 가장 혜택을 많이 누릴 거라 생각했던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발표되자 마자 닭쫒던 개 신세가 되었다. 자신이 가장 많은 혜택을 얻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가 받아야 할 혜택은 유약한 옥타비아누스 몫이었고, 안토니우스는 분개하였다. 안토니우스는 하늘 아래 옥타비아누스와 같은 땅을 밟고 있는 게 기분 나빴다. 그가 선택한 것은 노골적으로 옥타비아누스를 배척하는 일이었다. 속주에서 가장 인기가 적은 곳을 옥타비아누스에게 할당된 것은 이무렵이다.


카이사르의 빈자리는 여전히 안토니우스 몫이었다. 클레오파트라 곁에 안토니우스가 있었고, 클레오파트라의 재물이 있어야만 안토니우스의 야망을 충족할 수 있었다. 유언장이 옥타비아누스가 아닌 안토니우스에게 돌아가면, 우리의 역사는 바뀌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안토니우스는 그럼으로서 험난한 길을 걸어야 했고, 좋은 기회가 나타낫음에도 그것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였다. 한편 옥타비아누스는 험난한 길을 걸어가고 있음에도 조금씩 조금씩 카이사르이 후계자 다운 길을 걸어가게 된다. 노골적으로 안토니우스의 방해공작이 있었지만, 그는 나쁜 선택을 좋은 선택으로 바꿔 나갔다. 그건 옥타비아누스의 운과 기운이었고, 그의 역량이었다. 카이사르는 그의 이런 부분을 꿰뚫고 있었다. 여전히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는 자신보다 낮은 존재로 바라보고 있지만, 안토니우스의 전성기는 이제 끝이 났으머, 반면에 옥타비아누스의 전성기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자칭 디비필리우스 옥타비아누스라 불리는 그는 신의 아들이었고, 안토니우스는 그것을 얻지 못하였다. 옥타비아누스는 리비우스 드루수스가 암살된 뒤 리비아 드루실라와 강제 이혼하였고, 그 자리를 아내 스트리보니아와 함께 하였다. 소설은 그렇게 점점 더 옥타비아누스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으며, 그가 로마의 일인자가 될 거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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