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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모 Chang-mo ㅣ K-픽션 25
우다영 지음, 스텔라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4월
평점 :
같은 교실에 앉아 있는 창모를 발견하고 내가 제일 먼저 머릿 속에 떠올린 기억은 그 얘가 중학교 운동장 철봉에 한 아이를 초록색 박스 테이프로 묶고 있는 모습이었다. 철봉에 묶인 아이는 몸을 꿈틀거리며 분노와 수치심에 붉어진 얼굴로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10-)
창모는 자의 뾰족한 모서리가 아래쪽으로 빠져나오도록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는 남자애에게 달려들어 한 손으로 턱을 벌리고 입속에 자를 쑤셔넣었다. 창모에게 잡힌 남자애는 완전히 패닉에 짜져 의자를 놓치고 교실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14-)
창모는 언제나 자기 마음이 무너졌으니 세상도 무너질 거라고 확신하는 어린아이 같은 태도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에게 중요한 문제가 나에게도 당연히 중요할거라고 믿고 있었다. 창모에게는 그 종말이 진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46-)
그래서 더욱 두려워진, 이제는 먼 곳에서 뉴스로 전해 듣게 된 세상의 온갖 참혹한 소식들을 마주하면 나는 번번이 창모를 떠올린다. 연고도 없는 여자에게 농냑을 탄 음료수를 건넨 할아버지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버스 기사를 칼로 찔러 죽인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처음에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저런 사람이 정말 있단 말인가 놀라다가도 서서히 창모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p76)
우다영의 소설 <창모>는 우리 사회의 반인륜적 사건 사고의 시작이 되는 학창 시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성인이 되어서 사회부 기자가 된다. 하지만 사회부 기자 이전에 학교에서는 평범한 하이였다. 하지만 창모의 학창시절은 그렇지 않았다. 학교에서 이유없이 또래 아이들을 괴롭히게 되는데, 창모의 생각과 행동은 상대방의 마음이나 생각, 감정들을 읽지 못한 상태에서 우발적인 행위들이 연속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남을 괴롭히면서, 그 안에서 자기의 행동이 옳았다고 당위성을 부여하게 되는데, 창모의 이런 행동들은 묻지마 범죄의 또다른 전형적인 모습의 시작이며,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제시하고 있다. 상대방의 고통 따위 생가하지 않는 창모는 그렇게 악의 화신으로 거듭나고 있다. 창모 스스로 결코 해서는 안되는 행위임에도 자신은 꼭 그런 행동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나타나고 있었으며, 자기를 파괴하면서 상대방도 파괴하려는 악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창모는 그런 아이였다. 사이코 패스이면서, 소시오패스였다. 학교내에서 문제가 되는 행동들은 창모의 임장으로 보면 정당한 행동이지만, 외부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정당하지 않은 행동이다. 누군가를 위협하고, 스스로 그 안에 갇혀서, 그 행위를 즐기고 있다. 눈에 가시가 되는 아이는 파내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제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내 마음이 무너졌으니, 반드시 세상이 무너져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에 빠져서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창모는 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사람들은 창모를 조심하게 되고, 피하게 된다.
작가는 바로 이런 부분들을 짚어가고 있다.사회 안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소시오패스는 왜 일어나는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제2의 창모, 제3의 창모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에 대해서 새로운 답변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판단을 세워 나가고 있다. 작가 우다영은 창모라는 아이가 문제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창모와 같은 악의 존재를 생산해 내고 있는걸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질문을 던진다. 창모라는 아이가 실제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그 아이에게 맞설 것인가, 아니면 최선을 다해 도망다닐 것인가,그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없었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삶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