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관하여
남원정 지음 / 렛츠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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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왔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어릴 적 , 생일에만 맛볼 수 있었던 짜장면을 비우고 중국집을 나서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공간을 빈틈없이 살펴보고 음미하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p18)


얼마전 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확진까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지만, 나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삶의 무수한 자국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그냥 술술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해가 갈수록, 또렷한 듯 보이는 것들도, 어느 추리 소설에서처럼 내 머릿속 뇌가 꾸미고 부풀리고 왜곡하여 만든 가상세계로 치장된 모습들도, 급속히 나를 떠나고 있다는 것을.(p29)


"송안나에요."
그녀는 작고 가느다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아 네,저는 박칠규입니다."
긴장이 되었는지 가래 끓는 소리가 올라왔다. (p37)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거나 지나가는 사람을 따라가다가 다시 돌아서며 천장을 보거나 다시 쳐다보곤 하였다. 짙은 까만 눈동자, 그저 무언가에 관심이 있거나, 관심을 끌고 싶은 빛의 실루엣. (p75)


무엇인가에 기부한다는 선량한 마음 말이다. 그가 온갖 범죄를 저지른 악한일지라도 ,돈을 툭 던져주는 행위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선한 기분이 들고, 그러한 마음은 항상 즐겁기 마련이다. (p110)


그리움이다. 이 소설은 다섯편이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 박칠규는 386 세대에서 느끼는 삶의 동선이 드러난다. 첫 번째 그리움에 관하여, 두번째 길에 내리는 빗물, 세번째 마젠타 입술, 네번째 바다가 있는 사진, 다섯 번째 당신의 뜻대로 이며, 다섯 편의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인물 '송안나'가 있었다. 소설 속에서 그리움이란 사람에 대한 그리움, 장소와 시간에 대한 그리움, 기억에 대한 향유였다. 인간은 기억하기에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었고, 기억되지 않았기에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잊혀지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얻게 된다. 그로 인해서 그 소중했던 한 여인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더 잊혀지게 된다. 기억의 끝자락에서 사랑했던 여자에 대한 다양한 인생 스펙트럼이 다섯편의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내포되고 있다.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있으며,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삶에 대한 의지와 의미 구현, 주인공의 삶에 대한 관조와 가치관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우리의 내밀한 삶의 동선은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게 된다. 하지만 그 예측되어지는 그 시간조차도 우리가 이끌리는 데로 니어지지 못하고, 삶에 대한 깊이, 삶과 죽음에 대한 담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억이라는 하나의 가치가 우리에게 그리움과 외로움을 잉태하게 되고, 그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삶은 종료갇 되고, 죽음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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