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다시, 당신에게로
오철만 지음 / 황도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5리터 배낭의 반을 필름으로 채우고 돌아다녔다.지금은 미련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일반적이지 않던 새천년 초반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장기 촬영 여행을 떠날 때면 언제나 짐과의 전쟁이어서 비행기를 탈 때마다 엑스레이 통과로 골머리를 앓았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이동할 때마다 짐을 부리고 지키는 게 여간 수고롭지 않았다. 짐의 무게와 괴로움은 정비례하니 누구나 배낭을 가볍게 하려고 많이 신경 쓰던 때였다. 그때의 사진은 그런 수고로움과 함께였다. (p71)


걸어온 시간과 헤어져 바람이 일러주는 대로 따라가라고
모든 것은 순간일 뿐이니 두려움 없이 너만의 길을 걸으라고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너만의 오아시스를 찾아내라고 
하지만 그곳에서도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말라고

생의 긴 시간동안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소란스러운 목소리들.
호홉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못내 지워지지 않던 장면들.
그들은 모두 별마저 잠든 사막의 어둠 속으로 깊게 멀어져 갔다. 
눈을 감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머릿 속이 텅 빌 때까지
바스락바스락 사막을 태우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p163)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풋풋한 시절의 아내를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이 사무치게 아프다. 하나하나 정성들여 담았으면 좋았을 걸. 액자에 곱게 넣어 걸어두면 좋았을 걸.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흐르는 것인 줄 알았다면, 당신과 내가 이렇게 서둘러 무너질 줄 알았다면. (p248)


언어는 세상을 담아내기에는 불완전하다. 불완전함을 우리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이라는 감정을 가진 존재가 내포하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걸 생각하는지,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진은  우리를 담아내고 있다. 디지털 기기 이전에 카메라는 아날로그였다. 필름을 끼워서 세상의 프리즘을 담아내면, 그것은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아내게 되고, 새로운 생각들을 얻게 된다. 누군가 추구해왔던 삶의 방정식들을 우리는 사진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사용해서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고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적 정서를 잃어버리지 않고, 순간 순간을 캐치해 나가는 사진가의 자세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이며, 내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기억이라는 것 또한 언어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하다. 사진은 그 불완전함을 보완해 나가고 있었다. 인간은 현재의 순간에 머물러 있고 싶어한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흐르는 강물처럼 멈추지 않는다. 사진은 시간을 멈추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하나의 도구이다. 내가 머물러 있었던 곳에 대한 애틋한 추억들을 사진에 담아냄으로서 그 순간의 기억들과 인상적인 장면 하나에 대해서, 감정들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방치되어 있었던 필름 뭉터기들을 현상함으로서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 가게 되고, 초심을 잃어버린 나 자신과 만나게 된다. 사진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가 기억하고 있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고, 내 주변 사람들을 되돌아 보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아 나가게 된다. 여행을 통해서 무거운 배낭 한가득 필름을 담아가는 저자는 사진에 대한 애착이 드러나 있으며, 삶을 관조해 나가는 그 순간이 느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