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단 하나의 시 - 지치고 힘든 당신에게
조서희 지음 / 아마존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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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량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는 사랑을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p36)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p126)


시를 쓴다는 것,시를 읽는다는 것은 삶을 쓴다는 것이며, 삶을 읽는다는 것이었다. 응축된 문장 하나 하나 그 깊이의 심연 속에 들여가게 되면, 누군가의 삶이 자꾸만 비추어지게 된다. 시가 가지는 매력은 깨달음과 상상력에 있었다. 삶의 모든 것을 투영하지 않아도, 그 여백 속에서 나는 다 안다는 걸 짐작하게 해 주는 것이 시가 가지는 힘이며, 매력이다. 사람의 살아가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비슷하며,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문제들고 비슷하다. 그것이 시를 읽어가는 이유였으리라,시를 통해서 내 삶을 보게 되고, 시를 통해 나 스스로 성찰하게 된다.


책에 등장하는 시는 익히 잘 알려진 시어들이다. 그 시대에 쓰여진 언어들은 시간적인 감각에 의해서 형성되고 있으며, 언어는 단어 하나하나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었다. 책에서 느껴지는 것은 시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느림이다. 산문이 KTX 라면, 시는 비둘기호에 해당된다. 간이역 하나 하나마다 쉬어가게 되는 것이 시가 가지는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시어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시는 반드시 낭독을 통해서만 깊이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내가 읽는 것과 남이 읽어가는 것이 가지는  고유의 가치들을 책 속에서 짚어나가게 되었으며,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곽재구의 <사평역에서>가 눈길이 간다. 이 두 편의 시는 널리 알려진 시면서 삶의 기다림을 느끼게끔 도와주고 있었다. 책 속에서 느껴지는 그 하나하나에서 그의 생각과 가치관을 깨닫게 된다. 백석 시인은 과거와 현재에서 주인공이 마주하는 기다림은 예측되지 않는 기다림이다. 올 거라고 기약할 수 없는 기다림이 주인공의 심경과 겹쳐지고 있었다. 안타까움을 넘어서 애틋함마저 보여지는 그 안에서 주인공의 내면은 사랑이 엮여지지 않은 채 머물러 있는 그 순간을 나타내고 있다. 두번째 곽재구의 시는 간이역에서의 풍경을 나타낸다. 작은 역 하나 하나마다 서는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느림의 동반자였다. 추운 날씨에 톱밥 난로 하나에 의지해 가는 그 모습들은 어느새 과거의 추억이 되어버렸으며, 톱밥난로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기성세대와 톱밥난로에 대한 추억들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신세대가 교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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