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사중인격 - …인성에 문제는 없습니다만
손수현 지음 / 지콜론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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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병이라고 칭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걱정거리를 안고 산다. 걱정거리가 없을 때는 스스로 찾아 나서는 수준이다. 대부분 매우 쓸데없는 경우가 많은데 가령 이런 것이다. 불이 날까 봐 출근하기 전에 전기 코드 꼭 뽑기,고양이가 창문 밖으로 나갈까봐 고리까지 걸어 잠그기, 현관문이 제대로 안 닫혔을까 봐 1층까지 내려갔는데도 다시 올라가 확인하기. 아침마다 불안함과 씨름하다가 집으로 되돌아가는 일도 부지기수다. (P99)


무뚝뚝한 성격의 남편이 나를 가장 감동하게 한 말은 결혼하자는 말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말도 아니었다.

내 생일에 우리 부모님께 쑥쓰러움을 이겨내고 전한 말, '수현이를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밀이었다. 

나는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는 날이나
용돈이 빨리 떨어지는 날마다
내 존재 자체에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때의 말을 아주 요긴하게 써먹고 있다. (P121)


굳이 손가락으로 입 꼬리를 쭉 내리며 흉내를 냈다. 안 그래도 나를 골탕 먹이는 맛에 사는 남편에게 놀림거리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하도 부지런히 놀려댄 탓에 이젠 눈물이 나야 할 타이밍에도 남편 얼굴부터 생각나 눈물이 뚝 멈춘다. 남편 때문에 실컷 울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좀 우스꽝스런 모습이긴 하지만. (P147)


본가에 오면 허물 벗듯 옷을 던져두는 누나.
주말마다 소파와 한 몸이 되는 누나.
볼 때마다 나 살쪘냐고 묻는 누나.
그러면서 먹는 양을 절대 줄이지 않는 누나. 
말 안들으면 공격력이 높아지는 누나.
지면에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다중적인 얼굴을 드러내는 누나.

어쩌면 남편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남자는 남동생일지도.(P168)


독서를 하는 재미중 하나는 누군가의 삶과 경험들을 엿보는 것이다.나에게는 없는 그 사람의 특별한 경험들은 나를 자극시키고, 또다른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인간이 꿈과 희망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경험을 공유하게 되고, 그 하나의 경험들이 나를 자극시키고, 때로는 위로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걸 얻을 수 있고, 느끼게 된다. 저자의 일상 속에 묻어나는 직업적인 특성 뿐 아니라,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는 나의 삶에 작은 자극제가 된다. 


저자는 1987년생, 세 남매의 둘째 딸이다.위로 언니가 있고,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다. 일명 아이디어를 사고 파는 광고쟁이로서 저자의 삶을 들여다 보자면,우리가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갸늠해 볼 수 있다.특히 위 아래로 끼여 있는 둘째로서 자신의 삶의 패턴들은 남들이 놓치고 있는 은밀한 부분들까지 노출시키고 있으며, 그것이 나의 일상 속에서 마주한 경험과 상충될 때 , 작은 위로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 감동적인 요소들에 눈길이 갔다. 자신의 존재적 가치에 대해 존중해 주었던 신량의 모습은 저자에게 작은 변화였다. 결혼 후 맞이하는 생일은 뜻깊은 날이었다. 수현이를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무뚝뚝한 신랑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자극적인 경험이었다. 그것이 저자에게 잊지 못하는 이유였으며, 뇌리에 박히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그 감동을 악용하게 된다.신랑과 함께 하면서 약점 잡히는 그 순간에 모면할 수 있었던 건 ,생일날 남편이 보여준 감동적인 멘트였다. 자칭 저자의 약아빠진 처세술이 얄밉기도 하였으며,그 방법을 나도 써 먹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동시에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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