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 제12회 한국문학백년상 수상
유병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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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본 센터에서 함께 생활하는 어르신 및 직원들에게 칭찬과 격려로 밝은 분위기를 조성하여 타어르신에게 모범을 보였기에 상장을 수여합니다."

어머니는 이곳의 행복 전도사이다. 당신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을 행복타임으로 물들이고 계신다. 집에 계실 때 어머니는 늘 우울해하셨다.(p55)


시어머니께서 쓰시던 문갑을 열었다.
작동을 멈춘 트랜지스터 라디오. 금가락지와 시계를 담은 함. 태극 문양이 들어간 부채. 늘 손에서 놓지 않으셨던 염주 등속이 눈에 띄었다. 한옆으로는 누렇게 변색된 50여권의 공책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중 한 권을 펼쳐 들었다.
'관세음보살'(p57)


어머니는 며느리 유병숙이를 참 좋아하셨나 보다! 나를 보면 늘 칭찬을 쏟아내신다. 하긴 치매를 앓기 전에도 며느리 사랑만은 유별나셔서 하는 짓이 영 성에 차지 않아도 흉보는 일 만은 삼가셨다. 함께 한 적지 않은 세월. 그동안 쌓인 미운 정. 고운 정이 왜 없었겠는가.(p64)


허리가 꾸부정한 엄마와 휠체어에 앉아 계신 어머니는 사과 한 쪽에 차 한 장을 나누어 드셨다.연신 서로 "누구시냐?"고 묻고,"생각 안 나시냐?" 고 대답하면서,
"언니,동생하자더니 그새 잊으셨네. 불쌍해서 어쩌나..."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아휴 따뜻해."
어머니는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의 손에 당신의 손을 포개셨다. 두 분은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으셨다.(p85)


새것이 낡은 것이 되고, 낡은 것이 대로는 새것이 된다. 서로 순환되어지는 자연의 이치는 인간의 삶 또한 예외가 되지 못한다. 누군가의 죽음은 또다른 생명체를 잉태하게 되고, 우리는 지금까지 삶과 죽음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 안에서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때로는 행운이며, 때로는 슬픔이기도 하다. 내가 마주해 왔던 다양한 삶의 편린들, 그러한 편린들은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이 공유되어지고, 서로의 아픔과 슬픔, 기쁨과 즐거움을 공유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존하는 애틋함이란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 안에서 나는 내 삶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삶의 끝자락을 기록해 나가고 있다. 며느리 유병숙은 친정에서는 딸 유병숙이다. 이 두가지 타이틀을 안고 있는, 이 책을 쓴 저자는 자신의 삶의 편린들 중에서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의 모습들을 기록해 나가고 있다. 고장나고, 오래되어진 시간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는 물건을 간직하고 있는 시어머니의 모습들을 보면 때로는 애잔함과 마주하게 된다. 쓸수 없지만, 그 안에 기록되어 잇는 시간들이 그것을 버리지 못하게 된다.슬퍼하지만 슬퍼할 수 없는 그 순간에 우리가 기록하는 것은 긍정적인 기억들 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나 비슷한 패턴 속에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누군가의 삶을 기록할 때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을 마주하는 느낌은 달라질 수 있다. 치매라는 하나의 불치병에 대해서 그 안에서 무엇을 기록하느냐에 따라서 행복이 될 수 있고, 불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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