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에 핀 꽃 아시아 문학선 21
이대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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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오른쪽 어깨에 거린 소총, 그 총구에 꽃힌 꽃 한 송이. 누렇게 변색됐으나 하얀 꽃이었다. 어머니 무덤 앞에 놓아둔 백합과의 그 꽃과 흡사해 보였다. '총구에 꽃을 꽂은 병사'라는 대문자들과 그 밑에 깔린 '베트남의 평화를 갈망하는 병사의 퍼포먼스'라는 소문자들이 사진의 포커스를 알려주고 있었다. (p11)


윌리엄이 휘둘렀던 나무칼은 위력이 대단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혼혈이든 다른 인종이든 불량기를 주체 못하는 어떤 녀석도 그에게 집적대지 않았다.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자유를 얻은 그즈음의 월요일 아침이었다. (p32)


요나스 요나손은 쉰 해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1968년 2월, 새봄이 막 바다를 건너오는 쌀쌀맞은 절기의 사나흘을 고베에서 보냈다고 했다. 사흘이었는지 나흘이었는지 떡 잡지는 못해도 몇몇 기억은 정확히 내놓았다.


스물두 살의 봄날, 왜 나는 일본의 미군기지에 누워 있는가? 지금, 나는 쉬러 왔다.죽이는 의무를 쉰다.애국을 위해? 이념을 위해? 적을 이기기 위해? 천만에 ,아무것도 아니다. 죽이는 의무는 단순하다. 아주 단순하다. 내가 살기 위한 것이다. 내가 죽지 않으려는 것이다. 죽이는 의무는 죽지 않겠다는 개인적 열망이다. 방어적 살인이다. 처절한 발광이다. 그 열망, 스 살인, 그 발광을 쉬러 왔다. (p165)


'나는 누구인가?'이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의 정체성과 나를 규정짓는 모든 것들을 모으기 위해서다. 그 질문은 내가 생각한 가치관들을 규정짓고 있으며,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연쇄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하나의 질문은 또다른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어 우리는 새로운 생각과 가치관, 나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가게 된다. 하나의 질문은 또다른 질문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게 되고, 그 안에서 나는 생각을 얻게 되고, 생각은 나를 변화시킨다.여기서 문제는 정체성에 대한 모순이다. 손진호의 뿌리는 한국인이지만, 그의 삶 대부분은 미국과 스웨덴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손진호에게 도다른 시련과 고통의 원인이 되었고, 인종차별을 몸으로 겪게 되었다.그 흔적들이 기록된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앞에서 언급한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 이 소설의 핵심적인 요소였다. 소설 속 주인공 손진호는 한국 전쟁을 거친 그 시대를 살았던 전쟁 고아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손진호라는 아이는 그대로 있는데, 그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바뀌고 있다. 손진호는 미국에서 살아가면서 윌리엄 다니엘 맥거번이 되었고, 스웨덴에서는 요나스 요나손이다. 세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은 한국인 손진호 한사람이다. 세상은 이렇게 손진호에 대해 규정하게 되고, 그 규정된 그대로 손진호는 살아가게 된다.그리고 그는 군대를 통해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손진호는 그 임무를 수행하지 않기로 결심하였고, 탈령하게 되었다.


월남전. 한국 전쟁에서 부모를 잃었던 손진호가 월남전에 참전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평화가 잃어버린 상황을 목도하였고, 미국인 시민권자로서 월남전, 즉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누군가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던 부모의 운명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던 손진호는 베트남 전쟁을 통해서 누군가를 죽이는 임무를 갖추게 된다. 한국인에서 ,미국인으로, 미국인에서 스웨덴인으로, 자신의 이름이 바뀌면, 손진호는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문화들을 규정된다. 책에는 전쟁에 대해서, 평화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평화가 깨진 상태를 만났던 주인공이, 평화를 깨는 임무를 추구하게 되고, 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게 된다. 소설은 바로 그런 현실에서 보여지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되짚어 보게 된다. 죽음과 삶은 동떨어지지 않고, 서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책, 소설가 김대환씨가 쓴 <총구에 핀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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