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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세계 -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변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3월
평점 :
그렇다.우리는 천년을 사는 게 아니라 하루를 산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루, 그리고 또 하루 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을 저당 잡히게 하는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p25)
잠에서 깬다.
원하지 않지만.
꿈을 꾼다.
통제하지 못할
사랑한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섹스를 한다.
원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생각한다.
가치 없는 것들을
일을 한다.
돈만을 안겨주는.
늙어간다.
화살같은 속도로.
존경한다.
이 동사들 중 어느 것도 사용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잠에서 깨지만, 나는 원하지 않는다.(p34)
"새로운 사람이 왔다는 건 먼저 와 있었던 누군가를 잃었다는 뜻이거든요. 그녀의 애인이 어제 우리 곁을 떠났어요. 그들은 당신이 상상도 못할 놀라운 삶을 살았어요. 사랑과 성에 있어서 말이에요. 게다가 체스를 두는 취미도 같았지요.그녀가 갖고 다니는 체스판은 끝내기 못한 게임이에요..상상해봐요."(p51)
"저는 오늘 밤에 죽을 거에요.진심으로 유감이에요.나는 두렵지 않아요.10년 동안 아주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지요.여기서 보낸 6일은 내게 인생 전체였어요. 앞으로 어른이 되어야 하겠지만 아마도 나는 절대 어른이 되지 못할 거에요. 하지만 어른들도 과거의 어린 아이를 간직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백만명 중 한 사람은 간직하겠지만 나머지 구십구만 구천구백구십구 명은 그것을 두려움과 함께 묻어버리지요. 자기 자신도, 자신의 두려움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그래서 마치 그것들을 아는 양 행동하지 말아야 해요."(p85)
나의 죽음은 그 마지막 페이지를 완성해야 할 하나의 삶에 황금 훈장을 달아줄 것이다. 비록 내 삶은 고통과 상실로 가득하지만, 그 마지막 부분에서는 모든 것이 바뀐다. (p95)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생각하는 건 슬픈일이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당장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은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노하고,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즐기게 된다. 인간이 오만한 이유는 지금 당장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죽음이 일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공교롭게도 우리 앞에 놓여진 다양한 죽음의 형태는 나와 무관한 것처럼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이 나에게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살아가는 게 우리에게 또다른 행복이 아닐런지,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삶을 이야기 한다. 동시에 죽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주인공이 마주해야 하는 삶 이전에 또다른 죽음이 있었다. 절벽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한 소년의 아빠의 모습이 소년의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소년도 아빠를 따라 죽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다 마치고 죽는 것이 아닌 언제까지 죽을 거라는 것에 예견되어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소년이 죽음을 생각하면서, 모든 걸 바꿔 놓는다. 인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수많은 것들이 소년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소년에게 무의미한 행동들이었다. 현재의 삶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게 된다.
소년은 현재를 살아간다. 미래를 내다보는 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는 건 삶에 대한 성찰이며, 통찰력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보면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준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소비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버는 것이 소비를 위한 하나의 행위라면, 소년에게 그 행위는 의미가 없었다. 온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소년에게 의미가 있는 행위였으며, 자신이 죽은 이후를 생각하는 것도 또다른 의미가 된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할 것이고, 무엇을 하지 말것인가 곰곰히 생각하고 따져보게 해준다. 죽음이 저 먼 미래애 있다면 우리는 중요한 것을 뒤로 미뤄 놓눈다. 하지만 당장 죽을거라는 게 예견되어 있다면, 우리는 주요한 것을 앞에 놓는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 보고 듣고, 느끼고 즐기지만 정작 현재를 살아가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 성찰하게 해 주면서, 나의 죽음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완성하도록 이끌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