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3 : 세종·문종·단종 - 백성을 사랑한 사대부의 임금 조선왕조실록 3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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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은 양날의 검이었다. 군주가 바른 마음을 갖는 것이 세상이 바르게 되는 길이라는 말은 맞지만, 그 바른 세상이 사대부만이 지배할 수 있는 세사이라는 말은 그른 것이다. 군주는 만백성의 어버이여야지 사대부만의 어버이여서는 안 된다. 사대부와 일반 백성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 군주의 판단 기준은 옿고 그름이어야지 신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왕구에서 나고 자란 세종은 이것을 몰랐다. 경연이 갖고 있는 이중적 의미를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p106)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앞선 시대의 다스려지고 어지러웠던 자취를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앞선 왕조의 사례에서 무엇이 잘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해서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다.(p117)


세종은 사대부 계급의 이익과 상민의 이익이 충돌하면 사대부의 손을 들어주었지만,농민들 덕분에 나라가 돌아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농민들의 이해가 직결된 부분에서는 농민들의 견해를 중시했다. 일종의 농지세인 공법 제정 과정이 이를 말해준다. (p149)


사대부들이 세종을 극도로 칭찬한 것은 수령고소금지법을 제정한 것이나 종모법으로  환원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종이 사대부들에 대한 정치 보복을 단절시켰기 때문이었다. 세종 자신이 심온 사건으로 크게 위협을 느꼈으면서도 친정을 하게 된 뒤 이 사건에 대한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다. (p163)


세조은 정치 보복은 커녕 자신에게 반대한 인물을 더욱 크게 중용했다. 황희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황희는 태종 16년(1416) 세자 양녕의 비행 사건돠 관련 있었다. 선공부정 구종수와 악공 이오방 등이 대나무다리를 만들어 궁중 담을 넘어와 세자 양영과 함께 술 마시고 놀거나 세자를 구종수의 집으로 맞아들여 함께 여색을 즐겼다. 양녕이 좋아하는 매를 바쳤다가 태종에게 발각되기도 했다. (p173)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주요한 논리 중 하나는 백성들이 소송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수령고소금지법 소동으로 백성들의 반발을 직접 경험한 세종은 백성들이 법조문을 직접 읽을 수 있어야 원통함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최만리 등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반박했다. (p228)


문종의 치료는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주도했다는 말인데, 수양대군이 개입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제 열두살의 어린 세자를 둔 임금의 치료를 서른 여섯 살의 장성한 동생이 주도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p332) 

단종이 두려워 떨면서 수양의 협박을 따랐다는 것이다. 수양은 단종을 협박해 대신들을 부르는 명패를 내렸다. 대신들을 부르러 사람들이 떠나자 수양은 각 문에 역사들을 배치했다. (p377)


조선왕조실록 세번째 이야기는 세종-문종-단종으로 이어지는 세 임금의 이야기다. 조선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예상했듯이 이 책의 대부분은 세종 임금에 집중되고 있다. 세종 임금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임금으로서 남다른 존재감을 펼쳣으며, 살아생전 민의를 살핀 임금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우리는 세종의 좋은 점만 부각시키고 있어서, 세종의 과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경연을 즐겨했던 세종의 모습은 그의 업적 뒤에 감춰진 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부분까지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있다. 적을 만들지 않았고, 태종의 철권 정치로 인해 자신이 뜻한 바대로 정치를 해 왔던 세종의 역량은 지금 현재 지도자들의 표본이 되고 있으며, 민의를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정치의 기준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먼저 이 책을 읽으면, 세종 임금이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사람들을 중용해왔다. 특히 황희 정승을 중용하였고, 그가 뜻하는 정치를 구현하도록 높였다. 이런 세종의 포용성은 지금 우리 현대에서도 잘 시행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의 업적 이면에 숨어 있는 덕치를 엿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억울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서민들에게 소송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고, 그의 뜻이 후대에 전해져 내려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여 해왔던 점은 그가 추구한 정치의 깊이를 다시 엿볼 수 있다.  


문종의 삶과 단종의 삶은 비운 그 자체이다. 훗날 조선의 7대 임금 세조가 될 수양대군은 문종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었으며, 수양대군은 양평대군과 함세해 단종 폐위의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였다. 권력을 쥐기 위해서 조카의 권력을 찬탈한 수양대군에 저항하여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운동을 벌였지만, 그것은 또다른 화를 불러들이게 되었다. 이처럼 역사에서 권력은 큰 변혁의 원인이 되고, 권력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게 된다. 책에서는 바로 이런 세 임금의 발자취를 기록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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