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 죽으면 누가 날 떠올릴까? 피식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끄무레한 날씨. 비 쏟아지는 날도 아니며 함박눈 그친 저녁인데 서른셋이나 먹고 왠 고아 행세에 소녀 감성이람.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 지나 1호선으로 환승했다. (p32)


치료와 재발, 전이와 항암제,고통과 구토 .최후의 몸무게는 33킬로그램. 영오는 3시 3분이나 3시 33분에 시계를 보게 되면 기분이 가라앉았다. 33번 버스가 싫었고 텔레비전에서 33번 채널을 삭제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서른 셋이라는 나이가 싫다. 잊지 못했나 보다. (p38)


미지는 환경미화원 아줌마를 보며 여자판 꺼비인데 ,생각했다. 그만큼 두출을 닮았다. 숨겨둔 연인이 아니었다. 그 성마른 할아버지에게 아내만도 놀라운데 연인이라니. 신빙성이 떨어지는 가설이기는 했다. (p156)


"상처 없는 사람 없어. 여기 더치고, 저기 파이고, 죽을 때까지 죄다 흉터야. 같은데 다쳤다고 한 곡절에 한마음이냐, 그건 또 아닌지만서도 같은 자리 아파본 사람끼리는 아 하면 아 하지 어 하진 않아."(p171)


사람은 언제 슬픈가.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따뜻한 살과 살을 맞대며 이 또한 식으리라 인정할 때.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상처를 입고 똑같은 진물을 흘리며 똑같은 슬픔을 몇 번이고 반복하리라 예감할 때, 그때 나와 너의 연약함. 우리의 숙명 앞에서 경건해진다. 엄마, 벽을 보고 울던 엄마, 몰래 담배를 피우던 엄마, 죽음 앞에서 펼온해진 엄마, 어마의 상처에 어떤 고름이 맺혔기에,무슨 딱지가 앉았기에.. (p183)


딸에게 죽은 엄마란 서글픈 노래다. 평생에 걸쳐 몸 안에 퍼지는 맹독이다. 딸이 그 죽음에 적응하지 못했다면 낯선 독이고 익숙했다면 낯익은 독이다. 영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열고 매실액 단지를 보라에게 건넸다. 보라는 뜨거운 매실차를 후후 불었다. (p211)


일년에 키가 8센티미터씩 클 때에도 , 시험에서 일등을 할 때에도 나는 나에게 잘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키나 서억,그런 것은 주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럼 무엇이 중요했을까? 평화, 평화를 원했다. 하지만 ㅁ이 내 주변에 있는 한 나는 평화롭지 못했다. (p247)


서른 세살 오영오는 국어과 편집자이다. 문제짐을 출판하는 출판 겸 편집자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일에 있어서 완벽한 오영오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엄마가 지병으로 인하여 세상을 떠났고, 아빠 마저 세상을 떠나,서른 셋 오영오는 비로소 고아가 된 기분을 몸소 느끼게 된다. 준비되지 않은 고아란 이런 기분이구나 ,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오영오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죽음을 끌어당기는 매개체가 되었다. 


33이라는 숫자는 오영오에게 죽음을 연상시키는 트라우마와 같은 슬픈 숫자였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하게 되었고, 언제 어디서든지 불식간에 영오 앞에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혼자서 숫자 33을 지워나가게 되지만, 지울수록 그 숫자는 선명해지고 있다. 딸과 엄마의 사이, 그 사이에 숨어있는 사랑은 상처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된다.


오영오 가까운 이웃 버찌를 키우는 버찌 할아버지가 있었다. 누군가는 꺼비라 불리었고, 누군가는 버찌 할아버지라 불리게 된다. 두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들은 각자의 기준에 따라 불리게 되는데, 그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이름만큼이나 각각 다르다.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 외로움을 온전히 간직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그 운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슬픔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버찌 할아버지에게 찾아오는 불청객, 그 불청객은 버찌 할아버지의 가까운 존재였고, 존재와 존재는 서로 외면할 수 없었기에, 서로 교차되면서 각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회피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후회의 씨앗이 될 수 있고, 또다른 누구가에게는 아픔과 씨앗의 흔적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소설 <눈 깜짝할 사이 서른 셋> 은 우리의 내밀한 삶 속에 아픔의 상흔들을 훑고 지나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