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기의 여행 - 대책 없이 느긋하고 홀가분하게
송은정 지음 / 걷는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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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궁금했다. 여유는 타고난 성격인 것일까.노력한다면 누구나 여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여행책방을 오픈할 때 이름을 '일단멈춤'으로 지은 건 일종의 다짐이었다. (p51)


여유는 시간의 잉여분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다만 인생을 통째로 뒤엎을 필요는 없었다. 작은 습관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했다. 가령 버스나 지하철은 한 정거장 일찍 하차해 걸어다니고, 부족한 솜씨나마 천천히 해드크립 커피를 내려 마셨다. (p52)


배가 두둑해지고 나니 이전에 없던 긍정이 생겨났다. 아직 여행은 보름이나 더 남았고, 카드값 370만원은 다음달에나 청구될 예정이다. 그러니까 미래의 일은 미래의 나를 믿고 맡기도록 하자. 이 여해이 끝난 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 그날 밤 숙소의 현관 앞으로 오로라가 찾아왔다. (p78)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다만 누군가는 그것을 무심히 지나치는 반면, 어떤 이는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발견한 아름다움에 이름을 붙이고 기억하며 오래도록 음미한다. (p87)


내게는 이런 욕망이 있다. 해안의 선배드에 누워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다 그마저 지겨워지면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드는 인간이 되어 보는 것, 차려 입은 옷이 더러워져도 재의치 않는 성격을 지닌, 나는 한번쯤 그런 삶을 흉내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평생 그렇게 살 자신은 없었다. 마지막 휴가를 위해 간신히 열흘을 내주는 타협 정도가 나라는 인간의 크기이므로 (p128)


말문이 막히거 글에 진전이 없을 때 그 이유는 분명하다. 섬광처럼 찾아온 문장 한를 버리기 싫어 애써 붙잡고 있거나, 모르는 말을 아는 것처럼 꾸밀 때가 그렇다. 설익은 생각이 아직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럴 땐 무쇠로 만든 묵직한 냄비를 준비한다. 딱딱한 쌀알이 열기에 속속들이 잘 익는 동안 나는 근처에서 가벼운 독서를 한다, (p187)


고요한 숙소 안, 맞은 편 코타지에서 퍼져 나오는 조명이 유일한 빛이다. 바람이 둥글게 몸을 마는 소리.드문드문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 소리, 피곤이 묻은 코골이 소리. 구름이 잔뜩 몰려왔는지 아까만 해도 보이던 별들이 사라졌다. 창가에 둔 긴 소파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이 꽤 좋았는데 ,마주보고 누운 너의 발바닥을 쓰다 듬으며. (p198)


행복을 꿈꿀 땐 현재를 살라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현재를 살라는 것은 또다른 무언적인 고통의 실체이다. 효율성을 강조하고, 편리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 욕망을 추구하는게 당연한 세상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어리석은 사람','바보'라고 부르는 경우도 흔치 않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길들여져 살아가면서, 점점 더 빨리지는 세상,돈과 자본을 우선시하면서 살아가며, 정작 살아가는데 있어서 소중한 것들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빼기의 여행>을 쓴 송은정씨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살아가면서, 채우려 하는 우리들의 당연한 일상들을 잠시 내려놓고, 여행을 통해서 ,느린 삶, 여유로운 삶,현재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과정들을 사색을 통해서 들려주고 있었다. 바다와 숲길을 걸으면서, 하염없이 시간을 죽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채우지 않으면, 비어있는 공간에 무엇인가 들어올 수 있는 빈틈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의 의지에 따라 채우려 하지 말고, 반 정도는 누군가 채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것,그것이 여행의 새로운 관점이며,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다.


빼기의 반대말은 더하기다. 여행은 대채로 채우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여행을 다녀오면 어디에 다녀왔으며,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먹었으며, 어떻게 지냈다.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여행의 순간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런 여행들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적용해왔던 여행이다. 그렇게 스케쥴이 짜여진 여행을 다녀와야만 만족스러운 여행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여행의 모습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의 속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는 여행을 다녀와서 부뜻해 한다. 정작 여행의 본질적인 이유는 놓치게 된다. 지쳐있는 삶의 탈출구로 생각해왔던 여행이, 돌아와서 더 지쳐있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동안 우리는 더하는 여행을 추구하였고, 여행의 목적을 놓치면서, 시간을 채워 나가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 때로는 여행 속에서 보여지는 것들을 깊이 관찰하는 여행, 그 관찰이 내 삶을 좀더 나은 삶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여행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오래 그 여행이 내 기억 속에 남겨 되고 , 여행을 통해서 행복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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