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에 사는 여인
밀레나 아구스 지음, 김현주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할아버지는 원래 쾌활하고 혈기왕성하며 여자도 좋아했다. 1924년에는 파시스트들이 정신 교육을 한다며 들이민 피마자유를 먹어야 했다. 훗날 할아버지는 웃으며 그 때 이야기를 했는데 그 모든 역경을 이기고 살아남은 듯 보였다.
할아버지가 식욕도 왕성하고 술도 잘 마실 분 아니라 사창가를 드나든다는 건 아내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지만 가엾게도 온갖 추문을 다 들어야 했다. 게다가 남편에게 알몸을 보인 적도 없고 남편 역시 그런 것 같은데,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는 대체 무엇을 했을지 의문이다. (p20)


할머니는 칼리아리가, 어느 순간 갑자기 햇살 가득한 바다가 펼쳐지는 성 주변의 좁고 어두운 골목들이 보고 싶었다. 할머니가 심은 꽃들, 만노거리의 테라스를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들일 꽃들도 보고 싶었다. 지중해 특유의 북서풍에 휘나리는 빨래가 보고 싶었다. 투명한 바닷물에 하얀 모래 둔덕이 길게 이어진 포에토 해변이 보고 싶었다. (p67)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음식이 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난로를 켜고 하느님이 주신 그 선물을 이용해 다시 한 번 저녘을 먹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온몸을 만지며 탐닉했고, 모든 음식을 맛보기 전에 , 아주 맛있는 사르테냐산 소시지 하나도 할머니의 음부에 넣었다가 먹었다. 할머니는 죽을 만큼 흥분해 자신의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할아버지를 사랑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음란한 놀이가 계속되기만을 바랐다. (p80)


나는 청소도 하지 않고, 점령군인지 해방군인지 알 수 없는 미군이 들어간 이라크 상황을 전하는 뉴스 따위도 읽지 않고, 항상 지니고 다니는 노트에 글을 썻다. 할머니에 대해, 우리 할아버지와 부모님에 대해, 술리스 거리의 이웃에 대해, 양가의 이모할머니들에 대해, 리아 외할머니에 대해, 돌로레타 부인과 판니 부인에 대해, 음악과 칼리아리, 제노바, 밀라노, 가보이에 대해 썼다. (p112)


소설 속 주인공 할머니의 손녀 딸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본 한 편의 소설이다. 손녀딸은 자신의 할머니의 사랑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으며, 그 시대의 자유 연애의 실체에 대해서 들여다 보게 된다. 소설 속 이야기를 주도하는 주인공 할머니는 전쟁의 난리 속에서 할아버지와 결혼하게 되지만,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나의 할머니 ,외할머니의 경우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사랑하지 않지만 결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부모가 짝지어준 정략 결혼이 대부분이었다. 소설 속 할아버지는 아내와 결혼하지만, 창녀를 들여서 쾌락적인 목적의 육체적인 사랑을 꾀하게 된다.


할머니가 추구하는 사랑은 결국 정신병력적인 문제들과 깊이 연결되고 있다. 할아버지와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그것은 창녀에게 줄 돈이 할머니에게 돌아간 하나의 요식적인 사랑의 형태였다. 정작 할머니에게 정신적인 사랑의 형태는 전쟁으로 인해 두 다리를 다친 재향군인을 통한 사랑이었다. 정신적인 사랑의 형태였으며, 서로가 그 사랑의 깊이를 되세기게 한다. 칼리아리에서 태어났지만, 정작 칼리아리에 살아갈 수 없었으며, 제노바, 밀라노, 가보이를 정처없이 떠나면서 ,장소를 옮겨가면서 사랑의 형태도 바뀌게 된다.


할머니가 보여준 사랑의 형태는 지금의 시점으로 보자면 허용될 수 있는 숭고한 사랑의 현주소이다. 하지만 그 시대엔 그러한 사랑은 허용되지 않았다.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하지만, 그 사랑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할머니가 추구한 사랑은 상상을 통한 또다른 형태의 왜곡된 사랑이다. 사랑하지만 보여지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 이 소설은 언급하고 있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러브 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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