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서 풀꽃이다 - 산골 출신 양 변호사 감성 낙서집
양종윤 지음 / 자유문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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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길을 막고 서 있는 건 아니지만

그립다는 건


몸뚱아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p27)

ZIP

어떤 기억들은 데스크 탑 컴퓨터에 내장된
하드디스크 띠 모양의 두께에 압축파일로
저장되가도 한다.

저장된 기억파일은
압축을 푸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가동하면 어렵지 않게 되살릴 수 있지만

간혹
어떤 몹시 슬프거나 아팠던
차라리 몰랐어야 했던 사랑 같은 것들

지축이 흔들리고, 천둥번개 요동치던 날의 
부끄러웠던 이별 같은 것들

다시 꺼내면 처음 그 자리로 돌아가
다시금 불 붙어 모든 걸 불태우고 말
그 어떤 미완 같은 것들은

그냥 
압축이 풀리지 않은 채
데스크 탑 몸체와 함께 서서히 마멸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p45)


커피

너 안의 천사에게
말을 건넨다.

더운 김이 
안경알을 덮친다.

올 겨울은 
너무 가물고 푸근하다고
푸념하면서도

폭설이 내린 어느 대륙의 
얼어붙은 도시
사람들의 
수심어린 낯빛과
동동거리는 
얇은 양말의 두께를
걱정하는

이국땅
공장 굴뚝은 
검정색 고드름이
미끄럽다

아. 
어머니. 
어머니는
누우런 불빛
침침한 머리맡에서

한 땀 한 땀
구멍이 난
양말을 기웠었지.

문자다.

전화 안 받냐.
잘 지내냐. (p107)


기억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존 법칙이다. 기억하지 못하면, 살아가는데 있어서 불편함은 당연한지사 였고, 때로는 삶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선물해준 행복을 기억하지 못하고, 슬픔을 기억하지 못하고, 감정을 읽지 못함으로서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이 생각하는 불완전한 존재인 기억은, 불현듯 내 앞에 나타나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그리움에 대해서 우리는 그리움이라 쓰고, 기억이라 말하면서 살아간다.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기억할 때 비로서 발현되는 거였다. 갑자기 무언가를 보고 ,내가 그리워 하는 그 무언가를 연상하게 될 때, 그것은 나의 의지로 풀어갈 수 없는 복잡한 문제의 형태였다. 이 책에서 시를 쓰는 저자가 말하는 몸뚱아리란 나의 의지나 나의 욕망,욕구의 다른 말이며 시적 표현법에 따라가게 된다.


어머니의 존재가치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다. 그래서 자식된 도리로서 죄책감을 가지면서 살아가게 된다. 아랫사람에게 향하는 뜨거운 깊이의 사랑은 때로는 고마움으로 느껴지고 , 때로는 미안함의 연속된 삶의 변화이기도 하다. 나 자신을 울컥하게 만드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과 그리움은 어느 순간 내 앞에 놓여지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실체는 어머니의 손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그 깊이는 움푹파인 어머니의 상처 그 자체였다. 상처와 마주할 때면, 슬픔의 상념을 동시에 느끼게 되고,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지쳐가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어머니라는 존재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책에는 바로 그러한 가치들 하나 하나를 시로서 겹쳐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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