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 - 소심한 글쟁이의 세상탐구생활
김소민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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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어 극장은 일흔다섯이다. 입구 전광판은 옛날식이다. 줄둘이 칸에 빵강 파랑 글씨를 오려 끼워 넣었다. 그 글씨 뒤편 형광등이 부들거리가 켜지면 동네 주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 늙은 극장으로 온다. 매표소 안엔 점원 한 명이 심드렁하게 앉아 있다. 낡았지만 공들인 극장 안 카페엔 <록키 호러픽처쇼>,<스타워즈> 따위의 옛 포스터들이 졸고 있고 그 앞엔 1938년부터 온갖 풍파를 지켜본 원조 영사기가 서 있다. 나이가 들면 물건도 숨을 쉰다.
이곳은 댄스홀로 문을 열었는데 무성영화가 들어오면서 극장으로 변신했다. 1938년엔 <유대인 가면을 벗기다> 따위의 나치 선전물을 틀어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군 영국군 손에 차례로 넘어갔다가 원래 주인인 벨링하우젠에게 돌아왔다. 쿠어극장에게 전쟁만큼 무서운 건 신식 영화관이었다. 자동차로 15분 거리 지크부르크에 멀티플렉스가 생기면서 결국 극장주가 손을 들었다. (P78)


독일인들에게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가 왜 나에게 중요할까? 내 나라에 대한 인식이 나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질 거란 생각 때문이다. 그들이 그러리라 지레 짐작하는 건 내가 그러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만든 기준인지 옳은 기준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기준에 따라 앞줄에 서려 바둥거린다. 나는 머리로는 내가 인종주의자가 아니며 배경 상관없이 평등하게 사람을 댜할 수 있는 인간이라 믿었다.. 실상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람을 국적에 따라 남몰래 줄 세우는 인간이었다. (P143)


부탄은 콧대 높은 나라다. 개인 관광이 안 된다. 외국인은 여행사를 통해서만, 그것도 하루에 200~250달러를 내야 들어올 수 있다. 그 값엔 가이드, 호텔 숙식, , 교통비 따위가 모두 포함된다. 그 이하로 쓸 사람은 놀러 오지 말란 거다. 이렇게 까탈스럽게 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부탄 헌법은 최소한 숲의 60퍼센트를 그대로 보존해 후손에게 물러줘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모든 정책의 근간인 '국민총행복'의 주요 항목 가운데 하나는 문화 보존이다. 이 둘을 지키는 데 관광객이 많이 들어와 좋을 게 없다. 수는 줄이고 돈은 풀게 하자는 정책이다. (P257)


기자 김소민씨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서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만남이 이어지게 되었다. 한국과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는 스페인의 모습 ,순례길에서 만난 독일인과 결혼을 하게 되어 독일에서 신혼집을 차리게 되었다.그리고 독일을 떠나 부탄으로 삶의 여정을 바꿔 가고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독일, 부탄, 스페인에서의 자신의 삶을 비추고 있으며, 일상적이면서, 여행 에세이 그 자체이다.


여행,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다. 행복 지수 세계 상위권을 자랑하는 부탄도, 세계 경제 대국 독일을 우리는 부러워 하고, 그 곳에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독일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매력적이지 않고, 부탄도 마찬가지이다. 그건 우리가 한국 정서에 최적화 되어 있으며, 부탄과 독일 사람들의 정서는 한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낯섦과 마주하게 되고, 그곳에 적응해 가는 저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부탄은 느긋하면서 콧대 높은 나라이다. 살상을 하지 않지만 인도에서 고기를 수입해 먹는 나라, 여유롭고 무상교육과 무상의료가 지원되지만, 시설은 형편 없다. 좋아 보이지만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한편 개를 신성시 여겨서 사람이 자는 밤에 개가 짓는 소리에 밤잠 설칠 수 있다. 물론 부탄의 좋은 점도 있다 빠름을 강조하고 스피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나라에서 차를 끌고 역주행 하면 자신의 목슴을 잃을 수 있다. 부탄은 차를 끌고 역주행해도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길이 잘 닦여져 있지 않고, 신호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차는 속도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도시 곳곳의 도로에는 동물들이 있어서 스스로 알아서 피해 다녀야 한다. 한국에는 없는 정서가 부탄에는 보여지고 있다. 


독일도 마찬가지이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독일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저자는 지인들과 함께 하는 결혼식에서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일사천리로 결혼식이 끝나는 한국과 달리 독일식 결혼의 형태는 하루종일 이어질 때가 있다. 가까운 지인들과 흥청망청 즐겁게 결혼식을 보내는 독일의 모습이며, 저자는 결혼식을 끝내고 자신의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독일인은 또다른 독특한 것이 있다. 옛 것을 보존하는 독일인들의 정서는 영화관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새것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옛 것이 사라지는 게 보편적인 한국과 다른 독일의 모습이다. 영화관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지자 지역민들이 발품을 들여서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그것이 영화관이 사라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 책에는 바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독일과 부탄에 살아가는 저자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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