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생활자의 책장 - 아주 오랫동안 나에게 올 문장들
김다은 지음 / 나무의철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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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에는 들개가 산다. 그날도 혼자 산에 올랐다 내려오는데 수성동 계곡 쪽에서 배를 곯아 엉덩이 살이 쏙 빠진, 털도 제멋대로 자란 들개 한 마리를 만났다.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 녀석이었다. 배가 고프리라,뒤꽁무니를 따라가 가방을 뒤적여 삶은 계란 하나를 기어이 발치에 굴려주었다. 하지만 누런 들개는 풀숲의 계란을 보곤 '웃기고 있네'하는 듯 콧방귀를 끼며 제 구역으로 무심하고 도도하게 걸어갔다. 하긴, 비굴항 이유가 없다. 거저로 누구 덕 보겠다고 했던가? 더 가지려 욕심내지 않으니 그 발걸음이 저렇게나 가볍다. 염라동에 있는 초원서점에서 작사 수업을 듣던 때라 나는 들개에 관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 


사실 나는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들에게는 삶의 불꽃이라는 것이 ,즉 위험하고 불안하다 해도 기쁨과 슬픔, 환희와 분노가 터져 나오는 삶다운 삶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행한 자신을 어떻게든 희생시키려 버둥거리기도 하고, 무엇이 나인지 알 수 없어 갈지자로 흐릿한 세계들을 오가기도 하며 이 경계인들은 지독히 고독하다.(p68)


반복해서 말합니다. 책을 읽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런 정도의 일입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입니다.자신의 꿈도 마음도 신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일체를, 지금 여기에 있는 하얗게 빛나는 종이에 비치는 글자의 검은 줄에 내던지는 일입니다. (p100)


사람들이 큰 소리로 고함지르고 화내는 것을 보면 "저런!"하고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커다란 죄인 듯 보이지만 모든 사람이 범하고 있는 죄이다. 그것은 위선이 갑자기 위협을 받아 엉겹결에 변명하고 덮어씌우고 감추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을 보며 그 고약한 성격에 혀를 차기보다 인간 내면의 위선이란 녀석이 자기 잘못을 알고 괜히 성을 내며 민망해하는 거라는 이 해석! 빅토르 위고가 위대한 작가인 이유는 이렇듯 한 인물에게 놀랍도록 촘촘한 세계관을 부여해냈기 때문이리라. (p216)


텍스트를 주워담는다. 독서란 바로 그런 행위의 일종이리라 . 이 책을 읽는 이유도, 팻캐스트를 듣는 이유도 독서의 연장이다. 독서를 통해서 나의 무의식 세계를 건드리게 되고, 그 무의식 세계에 새로운 무의식적인 행위를 꾸깃꾸깃해 다시 넣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행위에서 저자는 어떤 책을 읽었고, 그 안에서 어떤 텍스트를 주워 담았느냐에 따라서 나의 상상력은 새로운 변화와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느 책과 비슷한 패턴으로 나타날 거라 생각해 왔던 게 사실이다. 대중적인 책들을 소개하고, 그 안에서 그 책을 읽어보라고 언급하는 그런 편견을 처음 가지고 독서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되는 책들은 대중적이지 않으며, 저자의 남다른 경험과 식견에서 우러나온 책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중에서 내가 읽은 책이라고는 필경사 바틀비, 모비딕, 레미제라블 이 정도였으며, 다른 책들은 나에게 생소한 책들이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책만 소개하지 않았으며, 일상을 책과 병행하여 언급하고 있다. 책이 가지는 효용가치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녀, 우리가 독서를 하는 그 목적이나 지향하는 바에 대해서 한 번 더 고민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정작 그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저자가 주워 담은 텍스트 하나가 그 책을 다시 읽어봐야할 이유를 만들어 주고 있다. 내가 놓친 것들을 다시 주워 담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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