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안병직 옮김 / 이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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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월요일 맑음.
버마 페구 시의 카나가와 씨 처소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고 종일 놀다가 저녘을 먹고 잤다. 오늘 밤은 버마의 맑게 갠 하늘에 둥글고 둥근 달이 유난히 밝아서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하도다. (p63)


카톤 해행사 택시부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다. 오오야마 군에게 부탁하여 흥남복권 15매를 사다. 부겐빌(Bougainville) 섬의 이번 해전에서는 전함과 공모 등 68척 ,비행기 527기의 대전과를 얻었다. 이래도 미국과 영국이 항복을 아니할는지.(p128)


화대는 20~30분에 1.50엔, 하사관이 30~40분에 3엔, 장교가 30~40분에 5엔이었기 때문에 120엔의 수입을 올리려면, 위안부 1명이 하루에 병사 80명, 하사관 40명, 장교 24명을 각각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안소의 총수입 2,590엔 중에는 술이나 기타 물품의 판매 수입이 약간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액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p36)


12월 5일 일요일
오늘부터 11일까지 1주일을 대동아전쟁 2주년 기념 주간으로 정하여 여러 기념 축하행사가 있다. 오늘은 오오야마 군과 아침에 일어나 특별시청 앞에 집합한 방인 800여명과 같이 싱가포르 신사에 까지 1리 반이나 건각의 승리 대행진으로 참배하였다. 행진에 2시간 반의 시간을 요하다. 니시하라 군의 처소에 가서 놀다가 카네다, 토쿠야마 등 버마에서 위안업을 하다가 위안부를 모집하여 다시 버마로 가는 양씨를 만나 고향 소식을 들었다. 밤 11시경 카톤의 숙사로 돌아와 자다. (p133)


7월 12일 수요일
싱가포르 켄힐로드 88호의 키쿠수이 클럽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다 송ㅇ옥에 대한 재류증명 절차를 완료하여 증명서가 내려와 받다. 보안과 영업계에서 카나모토 ㅇ애에 대한 여행증명에 필요한 증명서를 받다. 이번에는 10시경에 급히 경계경보가 나더니 24시경에 공습경보가 났다. 1시반 남짓에 해제되다. 밤 2시 반경에 잤다. (p194)


일본 위안부하면 대한민국 사회는 우선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일본의 만행의 척도가 되었고, 조선의 여성을 붙잡아 일본에 전쟁을 하고 있는 아시아 전역으로 보내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한다는 목적으로 몸을 바쳐왔다. 2019년 현재 위안부 할머니는 구십이 넘은 상태이며 , 20여명 정도 남아있다.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서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일본에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묵묵부답인 상태에서 답보 상태이다. 이 책에는 실제 일본인 위안부 여성을 관리한 조선인이 위안소에서 직접 쓴 일기를 번역한 책이며, 1942년~1944년까지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전황을 엿볼 수 있다. 


신가포르와 버마에서 일본인 위안부 여성들은 장교들을 상대로 몸을 바치게 된다. 책에는 버마 랑군 8개소, 모울맨 1개소, 페구 5개소, 프론 6개소, 바톤 1개소, 안판 1개소, 만달레이 1개소, 라시오 1개소, 아캬브 3개소, 싱가포르 10개소에 설치된 일본인 위안소의 직책과 이름, 출신지가 소개되고 있으며, 그들의 직책을 경영자 혹은 쵸우바라고 부르고 있다. 저자는 위안소 관리자로서 해방 후 1979년 사망하였으며, 그가 남겨놓은 일기들은 그 시대의 모습을 자세히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사료로 가치가 분명이 있었다. 한편 조선인 위안부 여성에게 자유가 없었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통념이 이 책에서 조금씩 무너질 수 있으며, 조선인 위안부 여성은 일본인의 꼬임에 의해서 팔려갔지만, 그곳에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얼마든지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책에는 그때 당시 군인들과 실제 결혼한 조선인 위안부 여성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일본인 위안소와 조선인 위안부 여성의 실태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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