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안 죽어 - 오늘 하루도 기꺼이 버텨낸 나와 당신의 소생 기록
김시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이거 먹어."
"뭔데요? 이게."
"먹으라고."
"이거 떡이야."
질문과 답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또 어떤가! 떡을 사왔으니 맛있게 먹으라는 소리 아닌가! 정확하지 않아도 대충 알아들으면 그걸로 된 거지,뭐.

고맙다는 말을 했는데 할매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왜냐하면 고맙다는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할매가 의자를 조금 끌어당겨 가까이 오더니 내 귀에 대고 조심스럽게 속삭였기 때문이다,

"많이 못 사서 떡 몇 개 없으니까, 언니들(직원들)한테 말하지 말고 혼자 먹어,증말 몇 개 되지도 않어."
그러더니 조용히 한쪽 눈을 찡긋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의 모습을 애써 유지한 채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진료실을 나간다. (P43)


끝의 차이, 나는 아직 그 차이를 스스로 메우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보호자에게 사망선고를 내리던 내가 거꾸로 보호자로부터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을 나가는 보호자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게 전부니 말이다,

응급실을 벗어난 지 어느덧 10여년,어느 정도는 이 생활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나는 아직 멀었나 보다. (P131)


"오래? 이제 겨우 스물셋인데?" 
"네 , 아마 올해 7년인가 8년인가 될 거예요. 만난 지."
헐 대박! 화장도 안 하고 파마도 안 하고 교복 치마도 줄여 입지 않던 단정하고 착한 이미지의 녀석에게 당시 남자 친구가 있었다는 니야기다. 그 남자와 7년 넘게 사귀다가 스물 셋의 나이에 결혼하겠다는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인가!

결혼한다는 녀석을 보내고 나니 그냥 좀 묘한 기분이 든다. 교복을 입고 오던 녀석이 결혼을 한다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동안 나는 또 어떻게 얼마나 변했을지 조금 궁금하다. (P204)


"할매."
"왜?"
"박스 팔아서 돈 받으면 그거 안 쓰고 모아놨다가 자식들이나 손주들한테 쓸 생각은 아예 요만큼도 하지 말아요. 그돈으로 할매 좋아하는 것 사먹어요. 알았죠? 60년을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해서 식구들 입에 풀칠해 줬으며 이제 그거 그만해도 된다고."
"그랴."

정곡을 찔린 할매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웃는다. 그래 봐야 또 어쩌다 놀러 오는 손주놈들 과자라도 사주려고 천원짜리 꼬박꼬박 모아놓을 게 뻔하지만 '그러마' 하고 대답이라도 해주니 고맙다. (P225)


한 권의 책을 읽고 이 책을 쓴 저자는 어디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대도시보다는 작은 소도시나 시골 작은 동네의원 원장인 듯 보여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종합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로서 10년간의 의사생활을 접고, 새로 시작한 일이 동네 병원 원장 일이었다. 매일 찾아오는 자신의 고객들은 불편하고, 어디가 삐걱거리는 분들이다. 돈을 버는게 목적이 아니라 시골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러한 동네 병원이었으며, 저자는 매일 찾아오는 할매와 함께 동거동락하게 된다.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잇는 그분들의 따스한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졌으며, 세상의 급격한 변화와 자본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에 벗어난 듯 살아가는 그 분들의 삶이 비춰지고 있다.


아련하였고, 무언가 찡함이 느껴졌다. 할매라는 단어 속에 느껴지는 무언가 울컥하게 해주는 그들의 삶 속에서 몸이 불편하고, 배운게 부족하지만, 그들만의 삶의 법칙과 원칙이 있었다. 글을 모르지만, 도의와 예의는 알고 살아간다. 때로는 마땅히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을 누리는 것에 대해서 괜히 미안해 하는 그분들의 삶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변화를 거부하는 삶을 지향한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으며, 할매로서 나이가 먹어가면서 걸어다닌느 것이 불편하고 , 잘 듣지 못하는 고객들에게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저자의 고단한 일상도 들여다 보게 된다. 할매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과 타협하게 되고, 할머니의 마음을 최대한 헤아려 주게 된다. 그럼으로서 의사로서 자신이 해야 하는 것 , 그 이상의 사랑방으로서의 동네의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병원에 찾아가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미안해 하는  모습들은 시골에서 순수한 할매들에게만 보여지는 소중한 삶이다. 또한 나이가 먹어감으로서 내 앞에 놓여진 그 나이의 무게감을 느끼게 되었고, 어릴 적 자신의 병원에 찾아왔던 소녀가 어느덧 결혼할 나이라는 것에 대해 깜짝 놀라는 모습 뒤에는, 누군가 나이가 먹어가는 순간 자신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걸 파악하게 되는 순간이다. 작은 것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욕구와 욕망을 추구하는데 급급한 우리의 삶에 작은 울림을 주는 책이 바로 김시영님의 <괜찮아, 안 죽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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