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 - Counselee : 결핍 혹은 집착에 의한 상처
김세잔 지음 / 예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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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엔 야한 꿈을 꾸었다. 이지야 교수가 강단에 서고, 뭔가 이상한 개념이지만 나는 그녀의 말이 아닌 행동을 받아 적는다. 언뜻 제복처럼 보이는 교쉼의 빳빳한 스커트에 벌써부터 흥분된다. 성기와 같은 필기구가 빳빳해진 덕에 손에 들고 글씨를 쓸 수 있었다. 여교수는 숨길 수 없는 나의 치부를 곁눈질로 확인하더니 갑자기 의자를 걷어차 무름 꿇린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잘 다려진 블라우스 너머 아찔한 가슴골이 내비쳤다. (P26)


후비의 키스는 진짜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하면 내가 했던 입맞춤은 철부지 장난 같은 거, 후비의 키스 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른다. 다만 봄인데도 여름 한철 매미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렸고,앙증맞은 참새 떼가 핑크빛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는게 보였다. (P92)


후비는 여신의 자태로 서 있다. 털끝 하나 없는 눈부신 나체, 나는 벌써부터 팽창한 사내의 몸을 야들거리며 후비에게로 달려간다.우린 격정적으로 포옹하며 지상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다. (P96)


교수님은 묵새기듯 창밖을 응시했다. 나는 목을 쥐는 소극적인 충동을 뛰어넘머 바지를 벗고 그녀의 입술이며 뺨이며, 이마와 코에 성기를 문대고 싶단 거칠고도 적극적인 충동을 느꼈다. (P115)


잠시지만 육지에 선 느낌은 초월이다. 초월적 존재로 올라선 듯한, 혹은 초월적 존재로서의 나의 정체와 지위를 회복한 기분, 파도에 실려 언제든 다시 바다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적 우위마저 확보하고 있는...그럼에도 난 여전히 물고기, 육지를 두 발로 걸을 수 없는 지느러미 물고기!(P180)


"하나의 계기로 날 둘러싼 모든 게 달라질 수 있어.대부분 그것은 비극적인 것이야.마치 진주조개의 몸을 파고든 날카로운 모래알 같은 것이지. 그때 나는 선택을 해야 해. 움츠러들거나 도망가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돼. 오히려 자기 존재를 짓밟고,내가 화장실의 어느 운수나쁜 아저씨에게 그랬듯 세상에 대한 환멸로 뭉개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게 되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이해해야 해. 문제를 풀 정도로 똑똑하거나 단련되어 있지 않다면 차라리 내버려두는 게 나아. 되레 역이기 밖에 더 하겠어?"(P216)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마. 정의는 복권만큼 확률 낮은 게임일 뿐이야. 마음의 분은 지금 당장 해결되길 바라지만 나의 마음은 초연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어. 세상은 무지하고 정의를 바라는 나의 마음은 연약하지만 언젠가 이 갸냘픈 날갯깃이 세상을 무너트릴 날이 올거야.나의 삶에 나비 효과를 믿어! 결국 그 날은 올테니까...."(P217)


퍼즐을 맞춰 나가는 행위에 대해서,그 첫 시작은 가볍게 시작한다. 하나의 퍼즐 조각은 정해진 그림자 위에 정해진 형태로 들어가게 된다. 복잡한 퍼즐은 하나로부터 시작되어 줄기를 뻣어나가게 되고, 퍼즐 한 조각은 새로운 퍼즐 한 조각과 묘하게 연결되고 있다. 퍼즐을 맞춰 나감으로서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에 가서 하나의 퍼즐이 온전히 완성될 수 있으며, 때로는 하나의 파괴로 이어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작가 김세잔이 쓴 소설 <내담자>도 마찬가지이다. 소설에는 주인공 기성후가 등장하고 있으며, 지적인 면과 미모를 동시에 갖춘 ,자칭 그 분야의 석학이라 부르는 이지야 교수가 나오고 있다. 퍼즐을 맞춰 나가는 것은 기성후였으며,  퍼즐조각에 해당하는 것은 이지야 교수였다. 그녀의 묘한 매력 속에 점점 더 빠져 들어가는 기성후는 완성된 그림의 형태인 퍼즐 조각을 가지고 싶엇으며, 그녀를 탐하고 싶어졌다.


그렇다. 퍼즐을 맞춘다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기성후는 그 노력과 시간을 집착과 결부기켜 나가고 있었다. 이지야 교수에 대한 집착,그녀가 가지고 있는,DNA에 대한 전문지식과 생물의 연결고리,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에 대한 탐닉이 소설 곳곳에 스며들고 싶었으며, 기성후는 그녀를 상상하게 되고, 그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바꾸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지얀 교수는 기성후의 성에 대한 욕심을 인지하게 되었으며,그 경계선을 오가면서 아슬아슬한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지얀 교수의 과거를 알고 있는 심미나 조교,심미나 조교로 부터 하나의 퍼즐 조각을 건네받게 된 기성후는 점점 더 완점한 그림의 형태를 지닌 퍼즐이 완성되고 있다. 이 소설은 그렇게 인간의 숨어있는 욕구, 정념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성에 대한 집착이 지식과 결부되어지고, 누군가의 경험과 만나게 됨으로서 소설은 인간이 추구하는 또다른 가치관, 이간이 추구하는 정의에 대해서 다시 꼽씹어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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