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8월 10일, 테오가 보리나주에 도착한다.
두형제는 나란히 걷는다.
하루빨리 본겆지를 파리로 옮기고 싶은 미술상,테오.
제빵사의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사는 전적전도사, 빈센트
빈센트는 걸어서 테오를 '작은 마녀'의 뜻을 지닌 '쁘띠 소르시에'라는 옛날 탄광 근처로 데려간다. 그곳은 이미 폐광이 된 곳이다. 빈센트는 그동안 테오에게 그 지역의 극한 아름다움을 너무나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러고 나면, 최근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보여 줄 생각이다. (p135)
8월에 테오가 왔다 간 이후로부터 10월까지 빈센트는 100가지 형태의 인물 형상 습작을 모두 마친다. 그래도 열심히 정진하고 있다. 그는 테오에게 말한다."성공이란 때로는 계속되는 모든 실패를 통해 얻게 되는 결과야."(p209)
10월 초, 테오에게서 중대한 소식이 날라온다. 빈센트의 습작 하나를 파리에서 활동하는 아타나즈 바그라는 화상에게 팔았다는 소식이다. 빈센트는 바로 답장을 보낸다. "바그에 대한 소식은, 정말이지 반가운 소식이구나"그리고 이 말에 밑줄을 세번이나 긋는다.
테오가 드디어 빈센트의 그림을 파는데 성공했다니! 다른 화가들과 교환한 그림은 지금까지도 많았다. 그리고 초상화를 그려 준 적 있는 파리의 화구상인 줄리앙 탕가에게는 하나 이상의 작품을 팔기도 했다. 그러나 드디어 테오를 통해 그림을 팔게 되다니,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p337)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를 알고 있다. 그의 삶은 비참한 삶 그 자체였으며, 그의 동생 테오가 아니었으면, 그의 예술적인 세계도 빛을 발하지 못했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실패로 첨철된 빈센트 반 고흐는 삐딱하고, 고집스러우면서, 스스로 자신감이 넘치는 화가였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서툴렀고, 개인 사생활 또한 문란한 삶으로 연결되었던 빈센트 반고흐에게 저가의 술 압생트는 빈센트 반고흐 앞에 놓여진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주는 또다른 위안거리였다. 그에게 동생 테오란 자신의 분신이었고, 자신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가 생각하는 테오는 동생 그 이상의 애틋함이었고, 빈센트 반 고흐는 예술을 하면서, 언제나 테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은 바로 테오와 빈센트 반고흐 간에 서로 주고 받았던 편지를 기초로 하고 있다. 빈센트 반고흐에게는 자신의 이름과 같았던 죽은 형이 있었고, 그의 우울한 삶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연결되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아버지 도루스 반 고흐와 어머니 안나 반 고흐 바르벤투스 사이에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동생 테오는 예술적 감각을 타고 난 형에게 필요한 화구를 장만하기 위해서 ,자신의 일생을 빈센트 반고흐와 엮이는 삶을 자처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애틋한 감정들은 빈센트 반고흐와 테오의 여성관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사촌 키 보스를 좋아하였던 빈센트 반고흐는 서로 결혼을 꿈꾸지만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곧바로 시엔과 교제를 하게 되는데., 그런 형의 모습에 대해 테오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빈센트 반고흐에게 필요한 화구를 사기 위한 돈의 지원을 테오는 차마 끊을 수는 없었다. 화랑에서 일하면서 버는 돈의 15퍼센트는 빈센트 반고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되는데, 그것이 빈센트 반고흐의 인생 곳곳에서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고, 우울감과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또다른 이유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빈센트 반고흐는 생전에 자신의 그림을 하나 밖에 팔지 못하였다. 그건 그의 예술적인 감각과 색체 구현에 있어서 돈은 필요하지만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나 독학으로 자신만의 개성적인 예술을 추구해 왔으며, 인상파주의로서 완벽함을 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고집스러운 예술관은 고갱과의 토론 과정에서 다툼의 원인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의 귀를 자르는 일탈적인 행동을 자행하게 된다. 남들의 눈에는 그의 기벽이 테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결정적인 이유였으며, 테오의 병이 악화된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그리고는 테오 또한 그의 형 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