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 내 기억이 찾아가는 시간
하창수 지음 / 연금술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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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는 살아오면서 여러 번 ,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처음 질문을 받은 건 열다섯 살 되던 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특별장학생 면접장에서였다. 미로의 대답은 과학자였다. 면접관은 더 이상 자세하게 묻지 않았다. 두번째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생물학과 2학년 때 열대우림 식물을 연구하던 인도 출신의 교수 야다브 쿠마르부터였다. 그때는 "모르겠습닏"라고 답했다. 쿠마르 교수는 "스피릿 필드를 계속 연구하는 건 어떻게 샐각하냐?"하고 되물었다. 그러곤 이렇게 덧붙였다. (p129)


인간의 경험은 지름 10억 광년의 텅 빈 우주로 진입하는 순간, 공과 무에 빠져버리고 만다!(p135)


방금 미로의 입에서 나온 말이 한때 유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 마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유리는 미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미로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열한 살 소녀는 막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된 친구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소년이 원한다면 자신이 가진 걸 모두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년도 소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소녀와 소년은 점점 나이가 들었다. 둘은 여전히 친구였다. 하지만 소녀도 소년도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점점 멀어진다는 걸 느꼈다. 열다섯 살이 된 소년은 케임브리지대학교로 떠났다. 소년도 소녀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매일 영상통화를 하며 지내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둘은 서로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소년은 영국에서 돌아왔고, 소녀는 영원으로 돌아갔다. 그때서야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소년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알았다. 너무 이른 나이에 사랑을 잃어버린 거였다. 소년은 처음으로 소녀가 좋아했던 초콜릿볼을 먹지 않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원망스러웠다. (p209)


이 소설은 삶과 죽음이 내포되어 있는 SF 소설이다. 먼 미래의 모습이 아닌 지금으로 부터 23년 뒤인 2041년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인간의 욕구와 욕망이 첨철되어 있는 한 편의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미로는 2041년 미래의 어느 한 시점에 존재하고 있으며, 물리학자 윤증승(닥터클린워스)의 아들이다. 물리학자 윤증승 박사가 소설가 닥터 클린워스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미로의 어머니가 죽은 이후였으며, 윤증승 박사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채 겉돌게 된다. 한편 미로에게는 네살 어린 시절 돌아가신 어머니가 있으며, 동갑내기 연인이었던 유리가 있다. 공교롭게도 미로의 곁에 있었던 이들은 세상을 떠나고 없었으며, 미로는 고아 아닌 고아인채 방치되고 있다. 미로의 연인 유리의 여동생 마리와 마리의 어머니 나오미, 이들은 미로의 아버지 윤증승 박사에 대한 추억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마리는 미로를 좋아하지만, 선듯 다가가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의 언니인 유리를 좋아하면서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미로에게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로와 마리의 미묘한 감정 동선의 변화는 이 소설의 스토리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삶과 죽음,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설의 장르는 SF이다. 그래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지고 있으며, 미래의 어느 한 시점에 실제로 일어날 것 같은 과학적인 상상력이 포함되고 있었다. 물리학자에서 작가로 변신한 윤증승 박사는 미로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미로는 아버지가 남겨놓은 유작을 근거로 자신이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나서게 된다. 소설에서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배달된 아버지가 남겨 놓은 이메일 편지가 , 그 편지를 보낸 당사자기 세사을 떠나고, 14년 뒤에 미로 앞에 도착하게 되는데, 미로는 그 메일이 자신 앞에 도착하게 되면서, 잊혀졌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한편 메일 한 통으로 인하여 죽은 이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미로의 현재 모습,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의 영혼을 끌어안고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그 모습을 보자면 애잖함만 물씬 느껴지고 있다. 이 소설은 1991년생 윤증승 박사와 2017년에 태어는 윤미로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태어난 1990년대생 부모님과 21세기에 태어난 아기들이 2041년에 미로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상상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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