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2 : 정종·태종 - 피와 눈물로 세운 나라의 기틀 조선왕조실록 2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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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정도 뒤인 재위 4년(1395년) 10월, 정도전은 새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으로 지어 바쳤다. 태조 7년 (1398), 대부분의 궁전이 완성되고 성이 축조되는 등 도읍지 한양은 안정되어갔다. 이성계는 크게 기뻣다. 한양이 길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P69)


왕씨들이 흘린 피 위에 세운 왕실이었다. 이성계는 고려 왕실 사람들과 명가 출신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라며 부끄러워했다. 방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는 이성계가 자초한 난이었다. 방석이 아닌 방원을, 아니면 처음부터 맏형 방과를 세자로 세웠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난이었다. 이왕 벌어진 일, 방원은 앞으로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제2, 제3의 방원이 나올 가능성은 충분했다.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었다. 그래서 방원은 자신과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사병 혁파가 바로 그것이다. (P89)


태종은 겉으로는 상왕을 극진히 모셨다. 상완이 환관을 보내 말을 전하면 무릎을 꿇어 앉아 신하의 예를 취했다. 태종은 정종을 극진히 모시는 것이 자신의 왕위 계승에 대한 시비를 줄이는 길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환관들은 이를 몰랐다. 태종 2년 8월 4일 , 태종은 자신의 측근 환관인 이용, 김완, 노희봉, 신용명 등을 순위부 감옥에 가두었다. 태종이 연어(年漁)를 상왕전에 바치라고 명했는데., 보내지도 않고 보냈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태종은 이 환관들을 사흘 만에 석방했다. (P106)


1,2 차 왕자의 난 모두 민씨가 거사를 종용했고, 처남 민무구, 무질이 선봉에 서서 칼을 휘둘렀다. 민씨의 두 동생은 모두 공신에 책봉되었다. 이방원의 왕위는 부인 민씨와 민씨의 친정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원경왕후 민씨는 <용비어천가>의 종묘와 영년전에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던 악장 가사에도 나올 정도로 대접을 받았다. <용비어천가>98장의 앞부분은 전진의 임금 부견의 이야기고, 다음에 살펴볼 뒷부분은 1차 왕자의 난 이야기다. (P165)


황희는 이때 이미 세자를 갈아치우려는 태종의 속마음을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황희는 태종이 자신에게 원하는 반응이 무엇인지 늘 잘알았다. 박석명과 황희만큼 태종의 속마음을 잘 아는 신하는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황희는 이번에는 태종의 뜻을 정면에서 그슬렀다. 그는 훗날 이 일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르게 된다. (P195)


"18년 동안 호랑이를 탔으니 또한 이미 족하다"
태종은 왕위를 호랑이 등에 탄 것에 빗댔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이 권력을 놓는 순간, 또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순간 비극적 최후를 맞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태종은 시간을 끌지 않고 이날 바로 왕위를 물려주기로 마음먹었다. (P328)


태종은 지친들에게 냉혹한 군주였다. 유학자 정몽주를 죽이고, 이복 동생인 이방번, 방석 형제를 죽였다. 민무구, 무질, 무휼,무희네 처남도 죽이고, 사돈 심온도 죽였다. 아버지 이성계를 내쫒고, 맏형정종을 내쫒고 왕이 되었다. 이런 측면만 보면 폭군이라는 평가가 어울려 보인다. 그러나 이는 모두 왕가 내부의 일이고, 권력 상층부의 일이다. 공신이나 지친들에게는 몰라도 힘없는 민초들에게 태종은 성군이자 인군이었다. 위로는 임금 자신부터 아래로는 노비들까지 모두 법 아래 존재했던 시기였다. 진정한 법치, 즉 만인에게 공평한 법이 적용되면 민초의 삶은 편안해진다. (P367)


역사학자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두번째 이야기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있다면, 이 책은 그 책과 성격을 동일시 하고 있으며, 조선왕조 오백년 역사를 들여다 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첫편은 고려말과 조선 개국을 논하였다면, 두번째 시리즈는 조선의 두번째 임금 정종과 세번째 임금 태종 이야기다. 조선의 기틀을 다졌으며, 충년대군 세종이 조선왕조 임금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임금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해 볼 수 있으며,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웠지만, 조선의 기틀은 세번째 임금 이방원 , 태종이다.한편 태종 이방원은  왕으로서 악역을 자쳐했으며, 자신의 권력력에 해가 되는 이들의 싹을 미연에 잘라 버렸다. 상왕이었던 정종에 대한 스토리, 조선은 대의 명분을 중요시하는 나라였으며, 사극 정도전에서 보았듯, 이방원의 삶 그 자체에는 조선의 역사가 온전하게 들어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태종 이방원은 성군이기도 했다. 고려와 조선에 결처 노비가 양산되는 문제들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법과 제도를 바꿔 나갔으며, 태조 이성계의 의지를 거슬리면서도 자신의 생각들을 현실로 만들어 나갔다. 정종을 상왕으로 모시고, 태조 이성계가 태상왕이 되었던 그 시절을 돌이켜 보자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딱 맞는 인물이 태종 이방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삶은 권력의 정점에서 권력자의 존재 가치를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었다. 이 책에는 태조 이성계와 세종 이도의 사이에 있었던 태종 이방원이 권력을 어떻게 활용하였으며, 신하를 어떻게 다스렸는지 지켜 볼 수 있으며, 우리가 역사를 왜 배워야 하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모범적인 사례가 바로 태종 이방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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