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섯 살의 청춘 - 가장 찬란했지만 가장 공허한 우리 세대를 위하여!
황성렬 지음 / 렛츠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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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분신처럼 나를 닮은 남동생이 차가운 철제 침대 위에 누워서 수의를 입고 있다.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장례사는 동생의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어머니가 사놓았던 수의를 정갈하게 입히고는 동생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무어라고 한단 말인가.어머니와 형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동생에게 무슨 말로 인사를 하란 말인가.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동생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울지도 못했다. 동생 입술에 대나무 숟가락으로 쌀을 세번 떠주는 의식을 치렀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복받쳐 올라왔다. (p134)


나이가 오십이 되었으니,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은 버리고, 즐겁게 뛰놀고 기뻐 웃음꽃 피우던 추억들만 되새기고 싶다. 그렇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배려심이 부족한 나의 미성숙한 인성 탓일까? 고향을 사랑하는 친구의 마음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할 때도 있다.스스럼 없이 그 속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쯤 올 수 있을까? 정년퇴직하기 전,나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너그럽게 고향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p151)


한 권의 책 속에서,저자의 책 앞머리에 있는 프로필에서 나는 저자의 직업 kbs 제2라디오 음향감독 보다는 저자의 나이에 눈길이 갔다. 황성렬씨는 1964년 생이며, 이제 퇴직을 코앞에 두고있는 오십 중반, 중년의 나이였다. 현역에 은퇴하기 직전 저자는 새로운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있다. 지금 현재 나는 저자의 나이와 비슷한 분들과 함께 소통하고, 대화를 나누고, 그분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나에겐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분들과 다양하게 소통하면서 그들의 희노애락을 나는 마주하고 살아오면서 관찰하고 있다. 주제는 흡사하지만, 한 권의 책을 접하는 나의 삶과 상황이 바뀌었기에 이 책은 새로운 의미로 내 앞에 다가오게 된 것이다.

오십대 중반이 가져오는 무게감, 그들은 너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것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저자는 방송 기술직에서 전문직으로 일을 하면서, 그 안에 자신의 삶 그 자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의 경계선에서 저자의 삶의 희노애락이 느껴졌으며, 행복과 불행을 마주하게 된다. 과거의 행복과 현재의 걱정, 미래의 후세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남겨놓을 것인가에 대한 삶의 의미들이 차근차근 보여지게 되었다. 살아가는 것과 죽음을 동시에 마주하는 불가피한 나이였기에 저자의 이야기 하나 하나가 그들의 삶 그 자체를 상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것은 앞으로 조만간 내가 마주할 삶이기 때문이다..나이에 대한 무게감을 느끼면서도 , 그 안에 변하지 않는 본질들을 엿볼 수 있었으며,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우리 세대, 그리고 현재 내가 마주하는 저자가 말하는 다음 세대,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의 교착점, 그것은 시간이 지나 나 자신의 저자의 나이가 된다면, 다음 세대가 곧바로 우리 세대가 될 수 있고, 저자의 삶의 무게감을 내가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저자의 삶의 기록들은 나의 삶에 있어서 경계해야 할 지점은 무엇이며, 포용해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가벼워 ㅂ이면서도 가벼워 보이지 않는 한 권의 책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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