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24
김유철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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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시신은 회동저수지 주변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연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1월 17일 며칠 동안 계속된 이상기온으로, 얼었던 저수지가 녹으면서 시신이 떠올랐다. 피해자의 점퍼에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학생증과 체크카드가 나왔다.그녀는 열흘  전 실종신고가 된 상태였다.부검 결과 외부의 뚜렷한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혈액 희석으로 인한 심기능장애와 입 주변부의 흰색 포말은 사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기전이라는 내용도 검안서에 첨부되어 있었다. (p20)


김은 해나의 책상 위에 있던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을 한동안 내려다봤다. 그 문장을 여러번 되풀이해 읽는 동안 김은 가슴 속에서 덩어리 같은 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한 소녀의 죽음 뒤에 숨겨진 수많은 진실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처럼, 비난은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와 사람들처럼, 병풍도 앞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3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을 보며 깊은 절망감을 느껴야 했던 그 때처럼 무기력해지지는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p152)


이 소설은 대한민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씁쓸한 소설이다. 민주주의 사회를 구현하면서, 때로는 그 안에서 이익을 추구하려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그 데두리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을 만들어 간다. 사회가 온전히 자신을 보호해 줄거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한 소시민이 그 사회에서 스스로 궁지로 내몰리고, 스스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절망감과 무기력감으로 가득 찰 때 그 순간 자신은 극단적인 상황을 맞이 하게 된다. 항상 우리와 같은 궤도를 돌면서 스스로를 옥죄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패턴들을 보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며, 누군가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들에 대해서 절망감을 느끼기 전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또다른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는 한 편의 소설과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김해나이다. 일상적인 소시민으로 살아왔던 김해나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OO마이스터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취업문을 두드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목도하게 되는 또다른 절망감, 그것은 스스로 주어진 목숨을 내려놓게 되는 또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 주인공 김해나의 죽음으로 인하여, 죽음의 배후에는 김해나의 흔적을 잘 알수 있는 누군가가 김해나 곁에 머물러 있었다. 살아가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은 일상의 연속선상, 주인공과 한 공간에서 잠을 이루었던 남자는 서로 좋아하는 밀접한 사랑 관계에서 용의자가 되어 버렸다. 세상 사람들은 남자에게 주홍글씨를 새겨 버렸으며, 그 남자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이 사랑했던 김해나의 죽음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걸 입증해야 했다. 죽어야 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 주인공과 하루 아침에 범죄자가 되어 버린 한 남자, 둘 사이에 사슬처럼 엮여있는 운명적인 장난은 그렇게 엉뚱한 상황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소설은 처음에는 치정관계로 인하여 생겨난 범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어떤 사건의 밑바닥에는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본의 논리가 숨어있었다. 마이스터고를 나와서 취업문을 두드렸던 김해나에게 주어진 것은 고객상담이었다. 하루 100콜 이상 해야 하는 현실들은 강자가 약자를 돈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현실 그 자체였다.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살아남고 싶어했던 여자 주인공의 안타까운 현실과, 죽음의 배후를 찾기 위해서 스스로 움직여야 하는 또다른 주인공 남자의 모습들, 그 두개의 스토리가 겹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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