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흩날리고 강을 따라 떠도는
박애진 지음 / 답(도서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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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구나... 이 여행기는 네 첫 번째 여행기 만한 생동감이 없어. 같은 자리에 있어도 무엇을 보느냐가 그 사람을 말한다. 네 본질이 바뀔 수 있을지. 과연 널 여행가로 받아들일 영주가 있을지. 허나, 난 기준을 충족한 아이들에겐 늘 기회를 줘 왔다. 허니 너도 기회를 받을 자격이 있다."
노인은 내게 두루마리를 건넸다.
"읽을 자격 없는 이에겐 함부러 내주지 않는 귀한 여행기니라. 네 글씨로는 정식으로 필사한 여행기가 아니니 날짜와 이름은 적지 마라. 이 여행기를 다 필사하는 알이 네가 떠나는 날이다. 네게 좋은 영향을 주면 좋겠구나."(p39)


"그랬을 게야. 카누인이 자네를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지. 난 여러 영주를 섬겼어. 마지막 반생은 한 영주를 모셨고, 자유로운 동시에 단단히 매여 있었다네. 무엇에도 구애받지 말게. 자네라면 다른 여행가의 시대를 열지도 몰라." (p155)


노파 말이 맞았네. 사내는 자기가 한 짓을 조금도 깨닫지 못했어. 매일 채찍질을 가하면 뭐한단 말인가? 그자에겐 그저 육신의 고통에 불과한데? 그자는 자기가 한 짓에 대해 아무런 후회도, 가책도 없었다네. 후회가 뭔지 모르니까. 가책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으니까.(p281)


소설은 허구의 세계이다. 현재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상의 삶을 스토리로 투영시켜 놓는다. 그 과정에서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단면은 작가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한 권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주인공이 걸어온 길은 사람들에게 무언의 가치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삶의 패턴을 느낄 수 있다. 시대를 떠나서, 시간이 이동되고, 장소가 이동되면서,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또다른 낯섦과 연결되고 있다.


작가 박애진님의 소설은 여행과 여행기에 대한 소재를 모방하고 있다. 지금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여행과 여행기는 신선함과 호기심 그 자체와 결부짓고 있으며, 현대인들은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변화, 삶의 일탈을 경험하게 된다. 외국으로 떠나는 여행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며, 여행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낭만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야행과 여행기는 그렇지 않다. 즐겁다기 보다는 상당히 위험하며,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여행기가 아닌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영주와 군주를 위한 여행기를 써내려 가고 있다. 여행기를 쓰기 위해서 과거 우리가 도자기를 굽는 도제 제도처럼, 영주의 눈에 띄기 위한 여행기는 일정한 형식을 갖춰 나가야 한다. 소설 속 주인공 야힘은 엘야르히무라 부르며, 노인에 의해서 직업으로서 여행가의 조건들을 갖춰 나가게 된다. 철저히 영주의 눈높이에서 쓰여진 여행기. 넣어야 할 것과 빼야 할 것들을 노인을 통해서 하나 둘 배워 나가는 야힘은 자신이 본 여행을 이향기로 옮겨놓는다. 영주와 군주에게 있어서 여행이란 하나의 유희꺼리였고, 위험한 곳에 대한 동경심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 야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가라는 직업을 내세웠으며, 주인공 야힘이 그런 인물이다. 과거 박지원의 열하일기처럼 여행은 낭만적이지 않았고, 목숨을 담보로하는 여행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엉터리이고, 허황된 스토리들이 과거의 여행기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여행을 하고 , 여행기를 쓰는 직업으로서 여행가가 그 여행기를 읽는 이들을 위한 여행기가 아니었을까 추정할 수 있었다. 그 시대에 권력자가 얻고 싶었던 황금이라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물질에 대한 동경심을 느낄 수 있으며, 황금이 가득한 나라에 대한 영주의 욕망이 보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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