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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 - 꿈꾸는 삶의 풍경이 열리는 곳
곽재구 글 / 해냄 / 2018년 12월
평점 :
날이 어두워지면서 이들은 하나둘 널을 밀며 개펄 밖으로 나왔다. 그제야 나는 나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욕심 없이, 거짓 부렁 없이, 단순하게,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개펄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개펄과 함께 생을 마감할 사람들..검게 그을리고 깊은 주름살투성이였지만 그들 모두는 샛별처럼 빛나는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p136)
세상을 살아나갈 때 문득 그 생각을 하면 그리워지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길 위에서,시장 거리에서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 잠 속에서, 날을 세우며 바라본 컴퓨터의 프로그램들 속에서.. 그 그리움은 지나간 시절의 추억이나 향수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그냥 알 수 없는 삶의 꿈들이 우리들의 가슴 한 언저리에 부려놓은 불씨이기도 합니다. 생각하면 한없이 풋풋해지고 따스한 물살들이 마음의 주름살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고.. 어떤 그리움들은 10년이나 20년이 지난 뒤에도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가슴을 흔들어놓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리움을 먹고 살아가는 동물들이라 생각했습니다.(p236)
1993년 출간된 내가 사랑한 사람,내가 사랑한 세상> 이후 25년간 한권의 책이 반복적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책 한권이 선물해 주는 그 따스함이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을 때, 그 책을 탐독학게 되고, 한 편의 영화를 시일이 지나서 다시 보는 것처럼, 한 권의 책을 읽고 다시 읽고, 또 읽게 되는 이유가 된다. 시인이 쓴 기행문은 특별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양 끝자락의 선을 따라 지나가는 곳, 그곳에는 바다와 인접해 있으면서, 사람들은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그 내밀한 삶 속에서, 그들은 햇볏에 얼굴이 그을려지고, 핍진한 삶을 살아가면서,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아간다. 때로는 바다가 잔뜩 뿌려 놓은 잔해로 인해 망연자실하고, 좌절하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 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과거의 향수와 삶의 터전 ,몸으로 부딪치는 삶의 터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바다에서 뭍으로 이동하는 가운데서도 그곳을 지키는 이들은 언제나 숨쉬고 있으며, 그들이 있는 이상 누군가 그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만들어지게 된다.
한 권의 책을 펼치면서, 내가 그동안 살아온 삶의 궤적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겐 삶의 터전이었지만, 나는 그곳이 스쳐지나가는 것이었으며, 하루의 짤막한 순간에 불과 하였다. 내가 가본 곳은 구룡포, 강화도, 경남 사천, 고성,부산, 포항 바닷가였으며, 책에 등장하는 포구와 도로가 내가 지나간 장소와 추억과 겹쳐지고 있다. 그들에겐 갯펄을 터전으로 삼아서 자식들을 뭍으로 내 보내 잘살게 하려는 삶의 목적도 분명 있으며, 살아가면서 바닷가 어부로서의 존재 가치도 분명하였다. 그곳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그곳을 가보지 않아도 상상하게 되고, 그곳의 경치에 대해서 기대하게 된다. 매 순간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변화와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포구를 가능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포구의 삶은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