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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병호 - 최우근 이야기책 ㅣ 북극곰 이야기꽃 시리즈 5
최우근 지음 / 북극곰 / 2018년 10월
평점 :
윤성이가 챡상 가운데에 줄을 긋고는 이렇게 소리쳤다.
"이거 38선이야! 이거 넘어오면 다 내거!"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전쟁을 우습게 생각했다. 그 때는 모랐으니까. 전쟁은 어렵다.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제일 어려운 건 열필을 지키는 일이다. 연필은 걸핏하면 또르르 굴러간다. 멈출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38선을 넘어간다. 매일 써야 하는 연필을 동그랗게 만들다니! 연필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생각이 짧은 사람인 것 같다.
내 연필은 전쟁이 시작되고 딱 1분 만에 38선을 넘어갔다. 다 넘어간 건 아니고 끝에만 살짝 넘어갔는데 윤성이가 탁 채 갔다.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지우개를 놓쳤다. 그것도 넘어갔다.
"야 . 다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그걸 가져가면 어떡해?" (p120)
최우근님의 <아! 병호>는 어린이 동화로 분류되어 있다. 그런데 청소년 소설이라 불러도 큰 무리가 없다. 이 책의 스토리가 지향하는 건 과거의 우리의 추억이며, 1960년대에 태어난 386 세대 어른들의 학창시절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좀 더 길게 보자면, 1960년대 뿐 아니라 1980년대까지 포함될 수 있으며, 한반에 40명의 아이들이 콩시루처럼 공부했던 그 때를 떠오리게 된다.
책 속 주인공은 최우진과 아병호이다. 아니 정확한 이름은 아병호가 아니라 우병호였으며, 병호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지적으로 상당히 모자란 아이였다.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아병호라 쓰고 다니며, 학교에서 친구들이 난감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모자라도 한 참 모자란 아이, TV 를 'ㅅㅗ' 로 읽고 있었고, 반 친구들이 한눈 파는 사이에 사고를 치고 있다. 지금이라면 결코 용납되지 않는 모습들이 책속에 펼쳐지고 있으며, 그럼에도 친구들은 병호를 이해하고 있다. 서로 함께 가면서, 병호를 통해서 반 친구들은 같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있다. 부족한 삶을 살아갔기에 허용되었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무형의 가치가 병호와 병호 친구들 사이에 있다.
'38선에 대한 추억' , 그때도 있었고, 내 추억 속에도 있다. 책상 하나를 둘이 썼던 국민학교 시절, 중간에 하얀 분필이나 볼펜을 써서 임의로 선을 그었다. 그걸 38선이라 불렀고, 넘어 오면 내것으로 생각했다.그게 볼펜이거나 비싼 샤프이거나, 지우개이거나 상관없었고, 반 친구들을 그 유치한 장난을 즐겨 했었다. 때로는 친구들이 큰 싸움이 있었고, 주먹질도 했었다. 선생님은 그 싸움을 말리기 급급했던 기억들, 지금은 같은 반이라도 책상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기억 속의 38선은 사라지고 없다. 가난한 삶 속에 피어났던 그 추억의 장면 하나가 책 속에 재현되면서 웃고 말았다.
병호는 좀 모자라지만, 반 친구들에게 유쾌함을 선물해 주고 있다. 선생님이 알려주는 기본적인 것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병호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친구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경험이나 지혜를 기지고 있다. 우진이는 병호를 관찰하면서, 병호의 또다른 모습들에 대해서 신기해 하였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